샤흐노자 아디르소바는 타지키스탄의 27세 신부다. 그녀는 얼마 전 시부모, 친정부모가 보는 앞에서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식을 막 끝냈을 때 그녀는 타지키스탄에, 신랑은 아프리카 튀니지에 있었다. 둘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화상 대화 프로그램인 스카이프(Skype)를 통해 원격으로 결혼했다.
2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타지키스탄에서는 아디르소바처럼 스카이프로 결혼을 올리는 일이 아주 흔하다.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타지키스탄은 인구의 4분의 1이 중동이나 러시아 등 외국에서 일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고국에 남기고 떠난 젊은 청년들이 많다. 그들이 혼기가 차자 스카이프로 결혼을 올리는 것이다. 귀국해 결혼한 뒤 다시 떠날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왕복 비행기 삯은 1년치 농업소득보다 더 큰 경우가 많다. 귀국했다가 기존에 일하던 나라로 재입국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도 귀국을 미루는 이유다.
이란 핵 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6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자전거를 타다 다리를 다쳐 미 보스턴의 집과 병원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이 소식 뒤 “핵 협상에 차질을 빚게 됐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하지만 케리 장관은 며칠 뒤 보스턴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스카이프로 스위스 협상팀과 연결돼 있어 협상에 전혀 차질이 없다”고 소개했다.
화상 대화 프로그램은 미국과 유럽의 대학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쓰여지고 있다. 유럽 출장 중인 교수가 미국 강의실에 노트북의 화상 프로그램으로 등장해 강의와 토론을 하고, 그 강의에 한국에 있는 학생이 원격으로 접속해 동참하는 일이 흔한 풍경이다.
미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1일 ‘현대 의사들의 하우스 콜’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워싱턴주에 사는 한 여성이 스카이프로 의사와 원격으로 진료를 받은 뒤 처방전을 받는 과정을 소개했다. 예약 없이도 집에서 의사를 만나 처방전을 받은 뒤 동네약국에서 금방 약을 짓는 편리함을 소개했다. 그 한 달 전 미 아이오와주 대법원은 원격 진료로 낙태약을 처방하는 것도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낙태가 늘어날 것이란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제때 처방받아 계획임신을 하도록 돕는 게 더 인권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판단해서다.
앞으로 인류에게 화상 대화나 화상 회의, 화상 진료는 갈수록 더 확산될 것이다. 시간은 더 아끼게 돼 있고, 공간의 제약은 더 극복하려 할 것이며, 무엇보다 편리추구 욕구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스카이프는 지난 5월부터 영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의 경우 사용자들이 대화하는 즉시 통역해주는 시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45개어로 늘어날 계획이어서 외국인 간 화상 대화도 활발해질 것이다.
국제사회의 그런 모습들을 보다가 원격 진료 논란이 일고 있는 우리 현실을 접하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인터넷 보급률이 17%인 타지키스탄에서도 화상을 통해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가 이뤄지는데 정작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에서 ‘화상 러다이트(Luddit)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다. 의료 종사자들은 정보유출과 오진을 우려해 원격 진료를 반대한다지만 사실 정보유출이나 오진은 고객이 더 걱정할 일이다.
어디를 갈 때마다 한국의 IT 발전을 칭찬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주 전 아프리카를 방문해서도 ‘제발 여러분들은 한국 좀 닮으라’고 강조했다. 그런 한국이 시간이 지나 “그 나라 옛날부터 인터넷 보급률 100%를 자랑해왔는데 아직 화상 진료도 제대로 안되는 나라”라고 언급되지 않을까.
손병호 국제부 차장 bhson@kmib.co.kr
[뉴스룸에서-손병호] 스카이프 웨딩
입력 2015-08-03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