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롯데그룹 ‘왕자의 난’ 이후 침묵하던 신격호 총괄회장의 육성이 31일 공개됐다. 신 총괄회장이 후계자로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낙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드러났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현실 인식 능력에 대한 의문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30일 신 총괄회장과 일본어로 나눈 대화를 녹취·편집해 31일 KBS에 제공했다. 신 총괄회장은 녹취록에서 “(신 회장을) 그만두게 했잖아”라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이 “신동빈이 아버님을 대표이사에서 내려오게 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래도 (신동빈을) 가만히 둘 거냐”며 역정을 냈다. 신 총괄회장은 자신이 지난 27일 해임한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에 대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 맡고 있다”고 대답하자 신 총괄회장은 “그만두게 했잖아. 그만둬야 하니까 강제로 그만두게 해야지”라고 말했다.
신 총괄회장은 또 자신이 쓰쿠다 사장을 직위 해제하면서 ‘열심히 하라’고 말한 것에 대해 “다른 데 가서 거기서도 제대로 잘 일하라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온전한 정신으로 쓰쿠다 사장을 해임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다. 이날 공개된 녹취록은 신 총괄회장이 정상적인 판단 아래 신 회장과 쓰쿠다 사장을 해임하려 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된 것으로 보인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이날 “장남 신동주를 한국 롯데그룹 회장에 임명한다. 차남 신동빈을 롯데그룹 후계자로 승인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신 총괄회장의 임명서도 함께 공개했다. 임명서 내용은 신 총괄회장이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도장을 찍고 사인도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의 녹취록을 살펴보면 의문 가는 점들이 많다. 일단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과 쓰쿠다 사장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느냐는 의심이 든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27일 이후 진행된 왕자의 난 전개과정을 전혀 모르는 듯한 발언을 계속하고, 신 전 부회장이 반복해서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들이 계속 등장한다. 신 전 부회장 측이 공개하고 있는 각종 해임 지시서나 임명서를 신 총괄회장이 직접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신 총괄회장의 인지 능력과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작성된 문서라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롯데그룹은 녹취 테이프와 임명서에 대해 “경영과 전혀 관련 없는 분들에 의해 차단된 가운데 만들어진 것이라 의도가 의심스럽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지시서는 지속적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핵심 지주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30% 정도 갖고 있다고 알려진 신 총괄회장이 장남을 지지하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향후 경영권 분쟁은 복잡한 양상을 띨 전망이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가 열릴 경우 양측의 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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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01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