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침묵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31일 열린 부친 신진수씨 기일 행사에 불참했다. 경영권 다툼의 키를 쥐고 있는 그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롯데그룹 후계구도는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27일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과 일본을 방문했고, 이튿날인 28일 오후 곧바로 귀국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 34층에서 칩거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일본에서 한바탕 소동을 겪고 한국에 돌아온 직후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의사의 진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입국한 그의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重光初子·88)씨도 입국 당시에는 가족 기일 행사 참석이 입국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신 총괄회장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입국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에 대한 장남 신 전 부회장 측과 차남 신동빈 회장 측의 주장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신 총괄회장을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장남 측은 아버지의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하려 했던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에서 나온 경영적 판단이란 점을 강조했다.
신선호 산사스 사장은 31일 기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하면서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와 관련해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그는 신 총괄회장의 여섯째 동생으로 신 전 부회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행 등에 대해 정상적으로 판단했느냐는 질문에도 “그럼요”라고 말해 신 총괄회장의 판단 능력에 문제가 없음을 내비쳤다. 이는 신 전 부회장이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영자로서 판단 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반면 롯데그룹 측은 신 총괄회장이 고령으로 심신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고 설명해 왔다. 롯데그룹 관계자 등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27일 일본 방문 시 자신이 해임한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했고, 이튿날 귀국 후 국내 계열사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 목격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그룹의 핵심 지주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을 30% 정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그가 경영 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 아들 중 누구에게 지분을 물려주느냐에 따라 경영권 분쟁의 무게추가 급격히 기울 수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가 열릴 경우 그의 결정에 따라 후계구도가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그가 주총에서 지난 28일 내려진 자신의 퇴진 결정을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신 회장 중심의 경영권이 확립된다. 신 총괄회장이 해임 결정을 거부하고 주총 표 대결에 나설 경우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결국 베일에 싸인 그의 건강과 인지기능 상태가 롯데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변수인 셈이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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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01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