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사진·9월 2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의 인기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화제작 가운데 하나였던 ‘벙커 트릴로지’의 연출가 제스로 컴튼-작가 제이미 윌크스 콤비의 최근작이기 때문이다.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지난 2년간 매진을 기록하며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지난 7월 티켓 오픈 이후 단번에 예매 랭킹 1위를 차지하는 등 연극 팬들 사이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벙커 트릴로지’는 말 그대로 벙커 3부작이다. 그리스 비극을 각색한 ‘아가멤논’, 아서왕 전설에서 영감을 받은 ‘모르가나’, 셰익스피어 비극을 각색한 ‘맥베스’ 등 3편으로 이뤄진 ‘벙커 트릴로지’는 벙커로도 막지 못하는 전쟁의 상처와 상흔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용면에서 원작의 깊이가 다소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이 작품의 형식은 관객의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천장을 포함해 무대 전체를 진짜 벙커로 만들어 관객들은 공연 내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벙커 속에 앉아 있는 착각이 든다.
갱스터 느와르 연극을 표방한 ‘카포네 트릴로지’는 시카고 렉싱턴 호텔의 비좁은 방 661호를 배경으로 1923년, 1934년, 1943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을 옴니버스로 그려냈다. 코미디 ‘로키’, 서스펜스 ‘루시퍼’, 하드보일드 ‘빈디치’까지 각기 다른 장르의 연극 3편에 20세기 전반 시카고를 주름잡던 갱 두목 알 카포네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카포네와 조금씩 관련돼 있으며 극 곳곳에 세 가지 사건의 연결고리가 숨겨져 있다.
이 작품 역시 ‘벙커 트릴로지’와 마찬가지로 관객에게 호텔 방 안에서 살인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원래 ‘벙커 트릴로지’와 ‘카포네 트릴로지’는 영국에선 관객정원이 60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 안에서 극한의 몰입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선 제작여건상 그 두 배에 가까운 100석을 마련해 극한의 몰입감까지 주지는 못하지만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가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사실 이 작품은 내용만 보자면 특별하지는 않다. 하지만 기존 연극의 형식과 틀에서 벗어난 색다른 구성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대학로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 작품은 연극적 재미만 충분하다면 관객이 얼마든지 지갑을 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이선스 연극이 티켓 판매 상위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한국 창작극이 연극적 재미를 찾는 관객의 욕구를 더 이상 채워주지 못하는 탓이다. 그 괴리를 이제는 좁혀야 하지 않을까.장지영 기자
바로 사건 현장에 있는 듯 … ‘카포네 트릴로지’ 연극적 재미 갖춰
입력 2015-08-03 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