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福… 행복에 이르는 8가지 길

입력 2015-08-01 00:25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한 행복에 이르는 8가지 길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도상으로 시작되고, 행복의 보화인 ‘하나님 나라’에 도달해서야 그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행복의 뿌리이고 나무요, 잎이고 꽃이며 열매다. 행복은 하나님 나라를 통해 완성된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스스로 ‘행복한 고난’(십자가의 고난)을 선택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은총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8가지 ‘마카리오스’를 선포한다. 마카리오스는 ‘기뻐하라’ ‘축제하라’는 뜻이다. 자칫하면 윤리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것은 평범한 사람이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그림이다. 한 사람이 심령이 가난함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애통하게 되며, 은혜와 용서를 경험한다. 결국 그분께만 충성을 맹세하고, 그분을 위하여 핍박까지 받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한 편의 대서사시이자 감동의 드라마다.

철학이 질문이라면 신학은 답변

최첨단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왜 심한 분노와 공허, 불안과 갈등,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는 인간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그는 일찍이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명제를 던졌다. 문제는 어떻게 ‘너 자신을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최고의 선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을 ‘행복’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을 행복에 이르게 하는 그 선은 무엇인가. 2000년 전 예수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행복의 비밀’을 알려줬다. 바로 ‘팔복’이다.

김영복(50) 서울 도봉구 갈릴리교회 목사는 “팔복은 단순한 여덟 가지 복이 아니다. 기독교 성경이 말하는 복의 개념은 기복적 신앙이 말하는 물질적 차원의 복의 개념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고 밝혔다. 그는 예수의 행복론(킹덤북스)에서 “기독교 영성이 말하는 ‘복’은 보다 광의적이고 전인적인 차원의 복, 즉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을 의미한다”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한 ‘팔복’은 인류가 그토록 갈망하였던 ‘행복’에 이르는 8가지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역설했다.

최근 ‘팔복’(na·da)을 펴낸 김화영(54) 나다공동체 대표는 “성경은 언제나 시대 앞에 우리를 서게 한다”면서 “자본주의 시대의 복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자본주의 시대 첫 번째 가치는 사용가치로서 ‘이것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실용적 가치다. 두 번째는 ‘이것을 팔았을 때 얼마나 받을 수 있나?’ 하는 교환가치다. 세 번째는 기호가치로서 ‘이것이 나의 신분을 얼마나 상승시키는가’ 하는 상승 가치다. 즉 이 시대의 복은 실용, 교환, 신분상승 가치와 연결된 것이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은 팔복이 전혀 실용적이지도, 교환할 만한 거래가치도, 신분상승의 가능성도 없다는 데 있다. 팔복을 구성하는 단어들 가난, 애통, 목마름, 긍휼, 청결, 화평, 박해받음 등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또 팔복은 모두 조건문의 구조로 돼 있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했다. ‘복이 있다’는 선언 앞에 ‘∼한 자’라는 조건이 자리 잡고 있는 것. 마음이 가난해야 하고, 애통해야 하며 주리고 목말라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부담스러운 조건 때문에 희망을 줘야 할 복에 대한 선언이 패배자의 자기 위안이나 넘지 못할 성벽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과연 팔복의 말씀은 현대인에게는 구시대적 착오에 불과한가. 김 대표는 “팔복이야말로 복음 중의 복음이며 복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착각에 대한 경고와 해답”이라면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사는 새로운 복된 삶에 대한 ‘그분의’ 선포이며 가능성”이라고 강조했다.

팔복은 세상 최고의 행복 방정식

팔복은 자본주의에 물든 세속적 가치관의 전복이며, 무엇보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목마른 우리를 대신해 성령이 우리 안에서 새롭게 이루어내실 창조적 능력에 관한 선포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이 이미 복된 일을 시작했다는 소리다. 이것은 복의 주도권을 완전히 이양한 자들이 누리는 자유로운 삶의 시작이요, 하늘나라가 인간의 삶에 내려와 이루는 새로운 창조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팔복의 메시지는 인생을 헛되게 낭비하게 하는 죄악의 그물망을 찢어낼 것이며 끊임없이 소진하고 경쟁하며 죄를 짓도록 뒷받침하고 있는 세속의 구조와 문화를 이겨내기를 원한다.

팔복은 서로 연결되면서 더욱 깊어지며 생명의 능력과 참된 복을 드러내는 길이다. 예수가 제시한 팔복 속에 기독교 신학이 녹아 들어 있다. 그 길은 기독교 영성이 도달해야 하는 출발점이자 마지막 종착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 길을 잃어버려서 표류하고 있다. 다시금 예수가 제시한 행복에 이르는 8가지 길을 찾아 떠나보자. 하나님의 나라, 그 행복한 대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100세를 넘긴 행복한 노인 얘기다. 그는 세상 그 어느 누구의 눈에도 행복해 보였다. 하루는 그 노인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어르신, 어쩌면 그렇게 항상 밝고 행복하신지요?" "그 비결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뭐 비결이라고까지 할 수 있나. 아침에 일어나 눈 뜨면 행복과 불행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거지. 나는 항상 행복이란 놈을 선택할 뿐이라네."

"그게 전부인가요?" 눈이 휘둥그레 커진 사람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정색을 하고 말한다. "사실 진짜 비결은 말이야, 나는 항상 약을 복용하고 있다네. 진정으로 원한다면 알려줄 수도 있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이라는 약일세."

행복은 세상 안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참된 행복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것부터 잡으면 된다. 긍정의 결을 따라 맘껏 누리는 것이다. 바람결, 머릿결, 나뭇결 등에 따라 흘러가면 된다.

밤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들이 나의 조명이고 저 멀리 보이는 강과 산들이 조명이지 않은가. 달팽이는 남의 땅에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등에 집을 지고 다니며 소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잡고 누리면 되는 것이다.

천국 복음의 역설 '마카리오스'

'복'(福)의 사전적 의미는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 배당되는 몫이 많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진리의 말씀에 목말라하고, 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깨달음에서 나오는 애통, 말씀에 사로잡힘, 의에 주리고 목마름, 긍휼, 청결, 화평, 의 때문에 박해를 받음'이다(마 5:3∼10).

세상이 정의하고 있는 복과 성경이 말하는 복의 개념이 너무나 다름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구약은 오실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 신약은 오신 메시아인 예수에 대한 책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복음(福音)을 전하는 책이다. 복의 실체는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팔복에 행복이 있다. "마카리오스! 기뻐하라, 그대는 이미 복을 받았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