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배금자] 화재안전담배 출시와 KT&G

입력 2015-08-01 00:20

독일의 법철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명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권리를 지키는 일은 개인의 명예와 인격을 지키는 일이며, 사회공동체 전체에 대한 의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6만명 정도의 생명을 앗아가는 담배를 제조·판매하는 담배회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15년 전 제기된 담배 소송은 공동체를 위한 공익 소송이다.

지난달 22일부터 저발화성 담배, 일명 화재안전담배 출시가 의무화됐다. 이는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7년 전에 제기한 화재안전담배 소송의 성과다. 화재안전담배는 담배를 피우다 중단했을 때 저절로 꺼지도록 만들어진 담배를 말한다. 미국, EU 등 선진국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독립적인 화재안전담배법을 만들어 화재안전담배 제조를 의무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저발화성 담배’라는 용어로 독립된 화재안전담배법 제정이 아닌 담배사업법 개정으로 이번에 처음 도입됐다.

2009년 경기도가 최초로 ㈜KT&G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KT&G가 화재안전담배를 만들어 수출하면서 국내에는 화재 위험이 높은 담배만을 제조·판매한 차별적 행동에 대해 법률적·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었다. 이 소송 제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화재안전담배라는 용어가 생소했다. KT&G가 외국에는 화재에 안전한 담배를 팔고, 국내에는 화재가 잘 나는 담배를 판다는 사실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담배회사가 연소촉진제까지 첨가하였기 때문에 국내 판매용 담배의 화재 위험이 높아진 사실도 속였다. 소송 덕분에 이런 점들이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KT&G는 흡연의 인체 피해에 대한 담배 소송에서는 첨가제 사용 목적에 대해 ‘담배를 빨아들이지 않는 동안에도 담뱃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연산칼륨, 탄산칼륨 등의 조연제를 첨가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화재안전담배 소송에서는 조연제 첨가 사실을 부인했다. KT&G는 화재안전담배의 용어를 사용해 국내 및 해외 특허를 출원했고(2011년 국내 특허 등록), 수출하는 담배에도 같은 용어를 썼다. 그러나 소송에서는 ‘저발화성 담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더구나 화재안전담배 소송 당시에는 국내에도 화재안전담배를 시판하라는 법원의 권고를 두 번이나 거절했고, ‘기술이 없다’는 거짓말도 했다.

경기도의 소송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화재안전담배를 의무화하는 법률안 도입 움직임이 일어나자 KT&G는 독자적인 화재안전담배법 제정을 반대했다. 대신에 담배를 사업으로 보호해주는 담배사업법에, 그리고 용어도 ‘저발화성 담배’를 사용토록 했다. 국내에서 화재안전담배의 용어를 피한 것은 담배 화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다. 그 후 KT&G는 저발화성 담배를 ‘친환경 담배’로 포장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진 출시한 것처럼 거짓 홍보하고 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작년에 발생한 전체 화재 중 담배 화재가 16.5%를 차지했다. 담뱃불 온도가 1100도 정도로 발화 원인이 강력하고 재떨이에 비벼서 끈 담배꽁초 불씨가 되살아나 화재를 유발하는 것도 담배회사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배회사가 담배로 인한 화재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화재안전담배를 마지못해 출시하면서 그것을 친환경 담배로 포장하고 있다. 국민들을 바보로 여기는 행동이다.

배금자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