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잔재 청산의 길] “친일사적 무조건 없애는 것만이 능사 아니다”

입력 2015-08-01 02:00 수정 2015-08-01 13:17

“일본이 한반도에 군림하기 위해 세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은 철거하고 고문 등 잔혹한 만행을 저지른 서대문형무소는 보존한 것처럼 일제 잔재 청산에는 이원적 접근이 바람직합니다. 올바른 역사 정립은 최종적으로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것입니다.”

최근 광주공원에 세워진 친일 인사들의 선정비를 찾아낸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김홍길(정치외교학과·사진) 교수는 30일 “옛 성거산이 있던 광주공원은 임진의병과 을미의병이 집결했던 역사적 장소”라며 “일제는 산을 없애 광주정신을 파헤친 것도 모자라 한때 신사(神社)까지 세웠다”고 밝혔다.

그는 “수년 전부터 마을기업,향교, 지역 시민단체와 함께 지역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문화재 보존 현황을 조사하다 생뚱맞은 선정비가 광주공원에 버젓이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광주공원은 5·18민주화운동 사적비, 4·19의거 영령추모비, 심남일 의병장 순절비 등이 세워진 의향 호남의 뿌리다.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 이근호와 조선 말기 무신 출신의 친일 인사 윤웅렬의 선정비가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 장군 공적비를 좌청룡 우백호처럼 떠받치고 있는 광경을 발견하고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김 교수는 “친일 인사 선정비가 1960년대 도심개발 과정에서 광주공원 공터로 옮겨지면서 막연히 조선시대 유물로 간주됐던 것 같다”며 “탁본을 뜨고 컴퓨터 화상에서 비문을 일일이 확대해 세월 속에서 희미해진 친일 행적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친일 사적은 전국 곳곳에 숱하게 산재해 있지만 부끄러운 과거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는 특정 가문에 의해 관리돼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조상들과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뒤섞어 놓아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는 “일제가 당시 부여한 벼슬과 친일 행적의 정도 등 구체적 기준을 세워 친일 인사들의 선정비를 철거하거나 그 옆에 별도의 단죄비를 세워 보존하는 등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친일 사적을 무조건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광주=장선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