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태극기 전성시대

입력 2015-07-31 00:11

1883년(고종 20년) 조선의 국기로 채택된 태극기는 3·1운동과 8·15광복 때 한반도를 뒤덮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기로 계승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나라사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9·28서울수복 당시 해병대 소대장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장면은 온 국민을 설레게 했다. 박정희정부 때는 공공기관과 학교, 직장 등지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국기 게양식과 강하식이 열렸다. 이 시각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 유신 말기 방약무인했던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은 청와대 국기 강하식 때 장관, 국회의원, 대학교수 등을 강제로 참석시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 태극기가 한때 존폐 검토 대상이 됐었다. 김영삼정부 때 총무처가 국가상징위원회를 설치해 국기 국가 국화 등 세 가지 국가상징의 변경 방안을 논의한 것. 태극기는 그리기가 너무 어렵고, 애국가는 지나치게 느리고, 무궁화는 매력 없는 꽃이라며 다른 걸로 바꿔보자는 취지였다. 역사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여론에 밀려 흐지부지됐지만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화려하게 재기했으나 그때뿐이었다. 요즘 국경일이나 기념일에 태극기를 다는 가정은 10분의 1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지난 4월에는 서울 도심 집회장에서 일부 시민들이 태극기를 불태우는 사건이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수모다.

다행히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태극기 선양(宣揚)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통령과 장·차관들이 일정기간 가슴에 태극기 배지를 다는가 하면, 군 장병들은 지속적으로 어깨에 태극기 마크를 부착키로 했다. 이를 두고 일부 진보좌파 진영에선 군사정권 유물이라며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단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기야말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이념이나 정파를 초월해 조국의 소중함을 새기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말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