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자 이사장 ‘캐스팅 보트’ 역할 땐 분쟁 장기화

입력 2015-07-30 03:17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가족이 1998년 울산 둔기리에서 다함께 모여 사진을 촬영한 모습. 왼쪽부터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신 총괄회장,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아들 정훈, 맏딸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 장남 신 전 부회장, 큰며느리 조은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 회장의 장녀 규미, 둘째 며느리 시게미쓰 마나미, 신 회장 아들 유열, 차녀 승은.롯데그룹 제공
롯데그룹 장·차남 간 경영권 다툼이 표면화되면서 향후 그룹의 핵심사업 추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연간 투자액으로 사상 최대인 7조5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후 인천국제공항면세점 등에서 ‘통 큰 베팅’을 해온 롯데 입장에선 경영권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투자 계획 등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 체제가 본격화된 후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해 왔다. 하이마트, GS리테일 백화점·대형마트 등 본업인 유통 부문 외에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기업 타이탄 등 굵직굵직한 인수·합병(M&A)을 진행해 왔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그룹의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도 내년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만 해도 KT렌탈을 인수하는 데 1조200억원을 투입하고 지난 5월에는 더 뉴욕 팰리스호텔을 8억500만 달러(약 9500억원)에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이보다 앞선 2월에는 인천국제공항면세점 입찰에 6조원이 넘는 베팅을 해 입찰 기업 중 최대인 4개 권역 사업권을 가져갔다. 또 세계 6위 면세업체 WDF 인수를 위해 4조원이 넘는 금액을 제시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신 회장이 이처럼 공격 행보를 보인 것은 2009년 발표한 ‘비전 2018’과 무관치 않다. 그가 그룹의 전략과 신사업을 책임지는 정책본부 본부장으로 있을 때 나온 비전 2018은 2018년까지 매출 200조원 달성, ‘아시아 톱 10 글로벌 그룹’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룹 매출도 2008년 43조원에서 2013년에는 83조원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돌발변수로 향후 사업 일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두 형제의 핵심 계열사 보유지분 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신격호 그룹 총괄회장과 큰딸인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의 행보에 따라 경영권 분쟁이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지난 27일 일본을 방문한 신 총괄회장의 의중이 분명치 않고, 신 이사장이 두 형제 사이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 이사장의 경우 롯데쇼핑 지분 0.74%를 비롯해 롯데제과(2.52%), 롯데칠성(2.6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단일 지분으로는 적지만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과 합칠 경우 지분은 불어난다. 1989년 롯데쇼핑 상품본부장을 거쳐 2008년 롯데쇼핑 사장에 오를 정도로 경영 일선에 있었지만 신 회장 체제에서 소외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사태가 조기 수습되지 않을 경우 신 회장이 강조해온 온·오프라인 유통채널 통합 작업인 ‘옴니 채널’ 구축, M&A, 국내외 신규 사업 추진 등 핵심 사업의 의사 결정이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말 이후 그룹 경영권의 무게중심이 신 회장 쪽으로 쏠리면서 사업 역시 탄력을 받았지만 경영권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한·일 롯데를 총괄하면서 제과업과 면세업 등에서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구상 역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롯데그룹 측은 그룹의 승계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된 만큼 경영권이 흔들려 사업이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이미 일본롯데홀딩스 지분의 과반을 확보했다”면서 “신 회장 우호지분이 최대 70%까지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