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관에서 열고 있는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전(展)은 물량공세가 대단하다. 동원된 소장품이 250여점이다. 보통 40∼140여점 선보였던 전시공간이다. 사이즈도 200호가 넘는 대작이 수두룩하다.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양을 걸어야 하다보니 묘안이 나왔다. 그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가 하면, 이중삼중으로 걸렸다. 벽 꼭대기에도 있다. 큰 벽에도 딱 1점을 걸어 몰입하게 하는 ‘화이트 큐브’ 전시 문법을 벗어난 파격이다. 마치 19세기 유럽의 살롱전을 보는 듯해 어리둥절하지만, 스펙터클한 느낌을 주는 데는 성공했다. 그게 의도하는 바였다면 말이다.
전시는 1부 전쟁과 분단, 2부 산업화와 도시화, 민주화, 3부 세계화된 동시대 등으로 구성됐다. 3부에서 21세기의 화두인 인구, 환경, 복지를 다루기는 했으나, 방점은 1, 2부에 찍혀 있다.
이수억 작가의 유화 ‘6·25 동란’은 불안한 피난 행렬을 무거운 분위기로 담았고, 주명덕 작가의 사진 ‘부산영도다리 밑’은 이산의 아픔을 실향민 집합지의 점집 풍경으로 표현했다. 권영우 작가의 ‘폭격이 있은 후’는 전쟁의 상흔을 담은 수묵화다.
2부는 주최 측의 말마따나 “정부 주도의 잘 살아보세 식” 경제성장을 담았다. 청계고가도로 등 건설현장 망치소리가 화폭에서 들리는 듯 하다. 압권은 정창섭 작가의 민족기록화 대작 ‘경제건설’(1977년)이다. 붉은 불도저와 새마을 깃발, 근로자의 상기된 표정을 통해 산업화의 맥박을 시각화한 수작이다. 울산공업단지 조성 모습을 가로 6m의 압도하는 듯한 화면에 담은 이 유화가 일반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2002년 청와대에서 이관된 뒤 10여년 넘게 수장고에 있다 이번에 햇빛을 보게 됐다.
민족기록화 사업은 1966년 당시 5·16민족상 이사장이었던 김종필씨가 착안해 화가 정창섭, 조각가 김세중을 만나 구체화시킨 ‘체제 선전미술’ 사업이다. 이후 10여 년 간 1백 명의 화가가 참여해 경제건설, 월남전, 구국선열 초상화 등 300여점을 남겼다. 안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이 상기될 판인데, 피난민 애환을 담은 ‘굳세어라 금순아’, 수출 100억불 달성의 해인 1977년 발표된 ‘아니 벌써’ 등이 흘러나오기 까지 한다.
영화 ‘국제시장’의 전시장 버전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대의 역경을 열정과 희생으로 극복한 산업화 역군들에 대한 바치는 헌사 같다. 국립역사박물관의 광복70주년 기념 특별전 ‘70년의 세월, 70가지 이야기’는 좀더 구체적이다. “국가건설, 경제발전, 민주화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사의 거시적 흐름을 평범한 시민들이 각자 걸어온 인생의 발자취를 통해 조명하자”는 취지다. 5남매의 맏이로 동생을 키워낼 수 있게 했던 구두닦이통, 전쟁의 폐허에서 낙담한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줬던 ‘홍콩아가씨’ 레코드판, 가난한 살림에도 자식을 위해 할부로 산 ‘금성TV’ 등등. 모두 누선을 자극할 기증품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소장품전,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한제국, 근대국가를 꿈꾸다’전 등 광복 70주년 기념전시가 넘친다. 한결같이 간취되는 것은 ‘애국심 코드’다. 국립역사박물관은 전시장 바깥에 아예 ‘바람개비형 태극기’를 장식했다. 1970년대 개발경제시대의 절대가치인 애국심이 미술관의 시각정치를 통해 새삼 강조되는 분위기다. 공익광고조차 “나를 위한 마음이 나라를 위한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애국심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친 애국심 고취 배경에는 정부 잘못을 개인 탓으로 전가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손영옥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내일을 열며-손영옥] 전시장의 애국심 코드
입력 2015-07-30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