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평생을 함께 한, 몸이란 낯선 동거인

입력 2015-08-07 02:38
대중성과 문학성을 인정받는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71·사진)의 장편 ‘몸의 일기’(문학과지성사)가 번역 출간됐다. 독특한 제목으로, 2012년 현지 출간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모은 책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슬픔에 젖은 딸에게 죽은 아버지가 미리 쓴 편지가 도착한다. 유품으로 평생 써온 일기를 남겼다는 내용이다. 일기 써온 사실도 몰랐는데, 그것도 ‘몸에 관한 일기’란다. 이어 소설은 ‘나’의 일기 형식으로 전개된다.

일기의 주인공인 ‘나’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산송장이 되어 돌아온 아버지와, 자식을 낳음으로써 그런 남편을 회생시켜보겠다는 희망을 품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다.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아무짝에도 써먹을게 없는 존재’로 여기고 방치한다. 병약하지만 지적인 아버지와 함께 종일 시간을 보내는 나는 몸보다 정신이 더 발달하는 기형적인 아이로 자란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나는 몸이 없는 그림자처럼 집안을 떠돈다.

그런 나에게 몸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사건이 생긴다. 열두 살 때 보이스카우트 활동 중 숲에 버려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체험한다. 일기는 그 때부터 시작됐다. “난 이 일기장에 내 몸이 느끼는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묘사할 것이다.” 그에게 일기 쓰기는 몸을 찾는 행위다.

일기 속에서 나는 중산층 지식인이다. 2차 세계대전때 레지스탕스 활동도 했던 프랑스의 저명한 학자로 나오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주지 않는다. 그런 나가 청장년을 지나 80대에 이르기까지 쓴 몸의 기록은 보편성을 갖고 있어 놀라울 정도다. 흥미롭게도 그게 바로 모두의 일상이며, 일생이다.

친구 사이에 섞이지 못할 때의 외로움, 2차 성징의 당황과 혼란, 사춘기를 겪는 자식을 마주하는 기분, 퇴직 후의 불안감, 손주가 태어나는 순간의 환희, 노안으로 안경을 맞추러 간 날의 느낌, 검버섯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 등등.

주인공은 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몸에서 풍겨 나오는 것들, 즉 실루엣, 걸음걸이, 목소리, 미소, 필체, 몸짓, 표정 등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우리 곁에 있다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려볼 때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흔적인 것이다.” (35세 때 일기)

죽음이 임박한 시점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관조적이다.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86세 때 일기). 몸의 일기가 갖는 궁극의 효과는 이런 게 아닐까.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