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을 사랑한 ‘바다공주’ 생명 구하고 하늘나라로…계곡물에 빠진 남녀 구조 후 심장마비로 숨진 이혜경씨

입력 2015-07-30 02:41
지난 26일 경북 울진 왕피천에서 물에 빠진 두 사람을 구하고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은 이혜경씨의 생전 모습. 날개가 그려진 벽에서 포즈를 취했다. 연합뉴스

평생 봉사하는 삶을 살던 평범한 50대 주부가 물에 빠진 생면부지의 두 사람을 구해낸 뒤 정작 자신은 목숨을 잃었다.

이혜경(51·여)씨는 지난 25일 밤 경북 울진의 왕피천 용소계곡으로 산악회원·지인 7명 등 40여명과 함께 무박2일 계곡 트레킹을 떠났다. 다음 날 오전부터 계곡을 헤엄쳐 내려오며 트레킹을 하던 이씨는 낮 12시20분쯤 마무리 구간의 잔잔한 계곡 물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때 계곡물에 등산스틱을 빠뜨린 최모(35)씨가 뛰어들었다가 허우적대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일행인 다른 여성이 최씨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수심 3m 물에서 제대로 헤엄치지 못하고 발버둥만 쳤다.

이씨는 바로 물에 뛰어들어 스틱을 건지고 두 사람을 힘껏 물가로 밀어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이씨는 수면 위로 힘없이 둥둥 떠올랐고 그 자리에서 세상과 이별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연세대 체육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서울시 대표 수영선수로 활약했었다. 수영 심판, 라이프 가드(안전요원) 자격증도 딴 그는 자신의 재능을 봉사에 아낌없이 써왔다. 지난해에는 등산 중 실족한 노인을 심폐소생술로 살려냈고, 물에 빠진 딸의 친구를 구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녹색어머니회, 지역 도서관 사서 봉사, 치매노인센터 주방 봉사, 장애인 아동 수영강습, 노인대학 봉사활동 등을 끊임없이 해왔다.

남편 김덕배(51)씨는 “아내가 산에 다니는 것을 좋아해 ‘산을 사랑한 바다공주’라는 닉네임을 즐겨 썼다”며 “사람을 구하는 게 일상인 사람이라 1년에 한두 명은 목숨을 살려내곤 했다”고 말했다. 엄마를 닮은 두 딸도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큰딸 유빈(25)씨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파견으로 필리핀에서 장기 봉사활동 중이고, 동생 수빈(22)씨는 지역 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이씨가 구해낸 최씨는 지난 27일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지켰다.

이씨의 딸들은 힘겹게 입을 떼며 감사를 표시하는 최씨의 손을 꼭 잡고 “우리 엄마 몫까지 잘 살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수빈씨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생각밖에 없다”며 “그냥 익사하셨다면 슬퍼만 했을 것 같은데, 엄마의 희생으로 두 사람이 살게 됐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씨는 29일 경기도 용인천주교묘원에 영면했다.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