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지사가 회의할 때 자주 배달시킨다는 도시락 업체 ‘즐거운 밥상’은 사회적기업이다. 야유회나 체육대회에 도시락을 납품해 돈을 버는데, 그 돈을 공짜 도시락 사업에 쓴다. 천안지역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1500여명이 이 회사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손두부 매장 2곳을 운영하는 ‘두부사업단 콩깍지’도 2010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두부를 만드는 직원도, 매장의 판매 직원도 모두 60세 이상이다. 두부를 팔려고 노인을 고용한 게 아니라 가난한 노인의 일자리를 위해 두부를 만든다.
현재 고용노동부에는 1382개 사회적기업이 등록돼 있다. 취약계층에 일자리와 교육·보육·돌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에 뭔가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선 회사들이다.
이런 ‘사회적경제’가 진보 진영의 어젠다로 여겨지는 것은 아이러니다. 무상급식·무상보육을 주장하는 이들이면 결식아동의 점심이나 독거노인의 생계쯤은 정부가 책임지라고 외칠 법한데 정부가 할 일을 민간에 맡기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은 노무현정부에서 만들어졌다. 사회적경제의 원조격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진보 진영의 유력한 대선주자가 돼 있다. 아마도 ‘당장은 정부가 다 하기 어려우니 민간에 맡겨서라도 하자’는 생각일 것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발의했다. 경제적 약자를 위한 사회적기업의 자립 기반이 취약하니 정부가 도와주자는 내용이다. 그가 ‘철학’ 문제로 대통령과 갈등할 때 그를 공격한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 법안도 문제 삼았다. ‘좌파 지원법’이란 비판부터 차라리 ‘사회주의적경제’로 이름을 바꾸라는 말까지 나왔다.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는 이들이 정부의 일을 민간에 아웃소싱하자는데 이렇게 반대하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당장은 정부 예산이 들더라도 그걸 종자돈으로 사회적기업들이 자립하면 정부가 감당해야 할 국민의 복지 욕구를 상당 부분 대신 채워줄 수 있다. 시장경제론자들이 강조하는 효율성 면에서도 꽤 괜찮은 투자다.
사회적경제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진보 진영이 복지사회를 구현하는 방편인 동시에 보수 진영이 작은 정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지긋지긋한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거의 유일한 접점이 아닌가 싶다.
유승민의 사퇴로 물 건너가나 했던 이 이슈를 새누리당이 다시 꺼내들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지난주 ‘사회적기업 거래소’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을 투자자와 연결해주는 증권거래소처럼 사회적기업이 재원을 조달할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브라질 등은 이미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상장(上場)기업이 재무제표 공개하듯 이 거래소는 사회적기업의 사업 내용과 경영 상태를 검증해 공개한다. 취지에 맞는 사회적기업을 골라 믿고 투자하거나 기부할 수 있다. 아마 주요 투자자 중 하나는 갈수록 사회 공헌 책임을 크게 느낄 대기업일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미 2012년 한국경영학회 포럼에서 “사회적기업을 위한 증권시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도 몇 년 전부터 사회적 거래소 설립안을 연구해온 터다.
김정훈 의장은 “아직 아이디어 수준”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이 아이디어를 “좌파적”이라 공격한다면 그야말로 난센스다. 2013년 영국의 사회적 거래소(Social Stock Exchange) 개소식에서 직접 출범선언을 하고 이를 금융 혁신의 대표 사례로 G8 정상회의에서 자랑한 사람은 정부의 복지 지출을 줄여가고 있는 보수당 소속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였다.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
[태원준 칼럼] 사회적기업 거래소
입력 2015-07-30 00:02 수정 2015-07-30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