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1865∼1951). 1890년 스물다섯 처녀의 몸으로 조선 땅을 밟은 미국인 의료선교사의 이름이다. 조선에서 43년 동안 의료선교를 펼쳤고, 선교사였던 남편 윌리엄 홀과 딸 이디스를 이 땅에서 잃었다. 아들 셔우드 홀은 한국에서 결핵 의사로 활동했으며 한국 최초로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다. 그녀의 가족은 모두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혔다.
교회사 연구자인 박정희(52)씨는 로제타가 세상을 떠나고 60여년이 흐른 2012년부터 그녀의 삶을 추적했다. 로제타가 다녔던 미국 펜실베이니아 여자의과대학의 문서보관소, 로제타의 조선 선교 활동을 지원했던 미국 북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의 문서보관서 등을 뒤졌고, 로제타의 손녀 필리스 홀 킹 여사를 만났다. 필리스 여사는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일기장과 조선 선교 초기의 일기장 네 권, 두 아이를 키우며 썼던 육아일기 두 권, 이밖에 편지와 사진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로제타의 일생을 온전히 되살린 책이 나올 수 있었다.
“그녀의 일생은 거룩했다.” 로제타의 생애는 신앙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신앙이 한 인간을 얼마나 위대하게 만드는지, 또 한 여성의 헌신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알려준다.
로제타는 서울 정동에 있던 선교회 지구에 살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인 보구여관에서 의사로 일했다. 또 이화학당에서 자라나던 10대 소녀들을 우리나라 1세대 근대 여성으로 키워냈다. 로제타는 그들을 ‘나의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김점동은 한국 최초의 양의사인 박에스더가 됐고, 여메례는 훗날 평양 진명여고 교장에 올랐다. 여종 출신인 복업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식 간호원인 이그레이스로 성장했다.
로제타가 “나의 분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평생 서로 의지했던 박에스더의 편지를 보면 로제타에 대한 호칭이 “나의 사랑하는 의사 선생님”에서 “나의 가장 사랑하는 언니”로 슬그머니 바뀐다. 로제타가 여성들 가운데서도 밑바닥에 있었던 종, 과부, 소박데기, 장애인들과 언니 동생으로 친구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성장을 따뜻하게 지원하는 모습은 가슴 떨리도록 아름답다.
저자 박씨는 “당시 외국인 여성 선교사들은 극단적인 억압에 신음하던 조선 여성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선택한 근대적 여성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줬다”면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소녀들이 우리나라 1세대 근대 여성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여성 선교사들이 조선을 찾았던 덕택”이라고 분석한다.
로제타는 우리나라 최초로 점자를 개발하고 맹인들을 교육했으며, 서울과 평양에 수많은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이 땅에 바쳤다는 사실이다. 평양 선교 중이던 남편은 겨우 한 살짜리 아들과 로제타의 배 안에 또 한 생명을 남겨놓은 채 숨을 거뒀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쓴 육아일기에서 아빠의 죽음을 이렇게 썼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애써 하려던 말은 ‘아빠가 평양에 간 사실을 후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주님을 위해서 갔고, 그분께서 보상해주실 것이오.’ 사랑하는 아빠, 그의 믿음은 어린이의 믿음과 같이 단순했고, 마치 아기가 어머니의 품 안에서 잠들 듯 죽음에 대해 아무런 공포도 없었다.”
딸 이디스 역시 평양 선교를 준비하던 중 태어난 지 3년 만에 병사했다. 그 무너지는 고통 앞에서도 로제타는 “우리에게 이디스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현명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라고 일기에 기록했다.
로제타는 남편과 딸을 앗아간 평양에서 제2의 선교 활동을 시작했고, ‘평양의 오마니’가 되었다. 그가 개인적 불행을 받아들이고 처참한 상실감을 견디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무엇인지 물어나가는 과정은 실로 감동적이다.
로제타의 일기는 삶과 신앙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한 여성의 치열한 고민을 보여준다. 지극히 정제돼 있지만 뛰어난 문학성을 갖춘 로제타의 100년 전 일기가 이 책을 특별한 읽을거리로 만들었다.
이 책의 제목은 ‘마더 로제타 홀’이 될 뻔했다. 인도의 ‘마더 테레사’보다 앞서 한국에 ‘마더 로제타 홀’이 있었다. 양화진에 가면 선교사 묘원에 꼭 들러야 할 것 같다. 거기 한국의 마더였던 로제타 할머니가 잠들어 계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푸른눈의 女선교사 ‘조선의 마더’ 되다
입력 2015-07-31 02:28 수정 2015-07-31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