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귀한 여름 한 철 붉은 꽃을 연달아 피어 올리는 배롱나무는 별명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꽃이 백일 동안 붉다고 해서 목(木)백일홍이고, 매끈한 줄기를 간질이듯 긁으면 나뭇가지가 움직여서 흰색간질나무, 간지럼을 잘 탄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고 한다. 나무가 미끄러워 원숭이도 미끄러진다는 뜻의 후자탈이라고도 부른다. 꽃이 다 지면 벼가 익는다고 해서 농부들은 쌀밥나무라고 불렀다.
배롱나무꽃(사진)은 자잘한 꽃들이 포도송이가 거꾸로 선 모양으로 주먹만한 꽃송이를 이룬다. 한자로 자미화(紫薇花)라 하고, 만당홍(滿堂紅), 후정화(後庭花)라는 별칭도 있다. 조선 후기 꽃에 관한 수필을 남긴 신경준(申景濬·1712∼1781)은 ‘순원화훼잡설’에서 자미화를 절도 있는 꽃으로 예찬했다. “오직 자미화는… 꽃잎이 생기는 것이 매우 많고 꽃이 필 때에도 힘을 쓰는 것을 똑같게 한 적이 없는 것이다… 먼저 핀 꽃이 지려 할 때 그 뒤의 꽃이 이어서 피어난다. 많고 많은 꽃잎을 가지고 하루하루의 공을 나누었으니 어찌 쉽게 다함이 있겠는가? 아마 절도의 의미를 터득함이 있는 듯하다.”
지난 23일 담양의 원림과 정자들을 돌아보다가 마지막 행선지로 명옥헌을 택했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 오희도(吳希道·1583∼1623)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이다. 명옥헌 원림은 가운데에 섬이 있는 네모난 연못을 파고 그 위쪽에 정자를 두었다. 정자 오른쪽에는 벽오동, 주변에는 수십 그루의 배롱나무와 소나무가 배치돼 있다. 담장 하나 두르지 않은 대신 주변의 자연을 병풍 삼은 소박함이 돋보인다. 고목으로 자란 배롱나무들에 꽃이 아직 만개하진 않았지만 화사함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다. 산들바람이 불어 여러 개의 꽃송이가 예쁘게 흔들린다. 연못에 떨어진 붉은 꽃잎들이 처연하다. 나뭇가지들이 꽃망울을 많이 달고 있어서 8월 초쯤 되면 온통 불붙은 듯할 것이다. 이때를 놓치지 말 일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명옥헌의 배롱나무
입력 2015-07-30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