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왕자의 난’… 신격호 강제 퇴진

입력 2015-07-29 03:01 수정 2015-07-29 18:08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8일 오후 10시10분쯤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에서 귀국하고 있다. 신 회장은 이날 장남과 차남의 경영권 다툼에 휘말려 창업한 지 67년 만에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93세의 신 회장은 휠체어에 의지한 채 무표정한 모습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롯데그룹의 창업주로 1948년부터 그룹을 이끌어온 신격호(93) 총괄회장이 67년 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28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고 롯데그룹이 밝혔다. 형식은 추대지만 사실상 반강제적인 2선 후퇴 조치다.

신 총괄회장의 비자발적 퇴진은 장자(長子)가 주도한, 실패한 ‘왕자의 난’에서 비롯됐다. 롯데그룹 2세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장남 신동주(61) 전 일본롯데 부회장은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지위 회복을 노렸다. 그러나 차남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으로 기울어버린 후계 구도를 되돌리지 못했다.

신 총괄회장은 27일 신동주 전 부회장 등 친족 5명과 함께 전세기 편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의 일본행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전격적이고 비밀리에 이뤄졌다.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롯데호텔을 비롯해 한국 롯데그룹은 이런 움직임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장남은 고령으로 거동과 말이 불편한 상태인 아버지의 일본행을 주도했다고 한다. 신 총괄회장의 큰딸인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 5촌 조카인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도 동행했다.

롯데그룹 주도권을 두고 동생인 신동빈 회장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오던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말 주요 계열사 3곳의 이사직에서 해임됐고, 1월에는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 부회장직까지 모두 내놓았다. 사실상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패배한 상태였다. 지난 16일에는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사실상 ‘포스트 신격호’의 경영권 승계가 확정됐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은 이 같은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를 앞세워 일본으로 향했고,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인 동생을 포함한 나머지 이사를 모두 끌어내리려 했다. 신 총괄회장은 27일 오후 일본 롯데홀딩스에 나타나 신동빈 회장을 포함한 이사 6명을 구두로 해임했다.

신동빈 회장 측은 다음날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신 회장 등은 28일 오전 일본 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이사회는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총괄회장의 해임 결정에 대해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정식 이사회를 통해 신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해 사실상 대표이사 자리에서 해임했다. 대표이사라는 법적 지위를 무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로써 장남의 쿠데타는 하루 만에 ‘진압’됐고, 향후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은 신동빈 한국 롯데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한승주 노용택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