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화 또 영장 기각에 재계 “무리한 수사”라는데…] 표적·과잉 기업 죽이기? 무뎌진 ‘기업 수사’

입력 2015-07-29 02:03
검찰이 정동화(64)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에 대해 2개월여 만에 재청구한 구속영장이 27일 기각되자 ‘무리한 사정수사’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오랜 기간 기업범죄를 수사하면서 기업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은 포스코 수사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재계를 중심으로 ‘배임죄의 무원칙성’을 지적하는 분위기도 형성된 지 오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기업범죄는 오히려 죄질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는 편이다. 경제사범에 대한 수사기관의 기소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사법부의 양형은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추세다. 경제 활성화를 등에 업은 비리 경제인 사면 논의도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기업 죽이기?…숫자는 다르다=대기업 수사가 벌어질 때마다 불거지는 ‘표적수사’ ‘과잉수사’ 비판은 과연 실체가 있을까. 2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입건된 기업범죄의 구공판 비율(정식재판 청구 빈도)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1998년 14.7%였던 경제사범 구공판율은 2005년 8.6%로 하락했고, 지난해 8.0%를 기록했다. 흉악사범 성폭력사범 등 5대 강력사범의 구공판율이 2005년 5.0%에서 9.3%로 높아진 것과 비교된다.

경제사범이 구속되는 빈도 역시 재계가 검찰을 겨냥해 펼치는 주장과 사뭇 다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에 따르면 2012년 1.8%였던 구속기소율은 2013년 2.0%, 지난해 1∼6월 1.9% 수준이었다. 불구속 사례까지 합쳐도 이 기간 기소율은 23.3%에서 20.8%로 낮아졌다. 홍태석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에 이 통계를 인용하면서 “유전무죄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검찰이 명확한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사범들은 수사 과정뿐 아니라 재판에 넘겨진 후에도 미온적 처분을 받고 있다는 게 일부 학계의 평가다. 최호진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에 따르면 2008∼2011년 횡령·배임 등 화이트칼라 범죄의 집행유예 선고비율은 50.8%에 이른다. 같은 기간 다른 범죄의 집행유예 선고비율을 보면 절도·강도 범죄는 42.8%, 특경가법 위반 전체는 40.6%였다. 최 교수는 “기업 고위 경영자에 대한 사법부의 온정주의형 집행은 국민에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신을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범죄 수사, 왜 장기화되나=기업범죄는 내부 고발 없이는 색출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능화됐다. 여기에다 대부분 기업은 국회와 수사기관 주변에 대관업무팀을 파견해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대관업무팀을 중심으로 한 실시간 정보보고는 증거인멸 등 측면에서 검찰 수사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에서도 소환조사를 받은 이들이 각종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내용을 공유한 사례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강한 특유의 기업지배구조도 실체적 진실 확인을 어렵게 만든다. 기업범죄 수사는 종종 기업 내부의 자체적인 ‘꼬리 자르기’로 무력화되곤 한다.

포스코 수사가 그룹 수뇌부와의 연결점을 밝히는 과정에서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주요 ‘윗선’에 대한 진술이 제한되면서 검찰 수사는 외곽 다지기 작업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 전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뇌부를 향한 수사 속도는 더욱 더뎌질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수사기관 전문성 확보 필요=사람이 아닌 비리를 쫓는다는 검찰은 ‘무리한 사정수사’란 비판에 수긍하지 않는다. 기업범죄는 파급 효과가 점점 커지고 있고, 환부를 도려내는 수사는 궁극적으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올 들어 유독 대기업 수사가 많다는 얘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유·무죄 판결과 별개로 수사선상에 오르는 순간 기업 입장에선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입는다는 점은 검찰이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환부만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기업범죄를 꿰뚫을 만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크다. 이에 회계·금융·전산·무역 등 전문인을 수사인력으로 쓰는 방안, 공익신고자보호제도 및 포상신고제 활용 등이 대응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