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옷에 하얀 망토를 두른 번개머리의 그 사람, '번개맨'이 무대에 나타났다. 가슴 위에 번개무늬가 반짝이고 공연장을 메운 아이들의 눈도 반짝반짝 빛났다.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거나 "번개맨"을 외치면서 그의 등장을 반겼다. 번개맨 코스프레를 한 아이들이 곳곳에 있었다. 지난 25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어린이 뮤지컬 '번개맨과 비밀의 문 4' 첫 공연 풍경이다.
티켓 오픈과 동시에 예매율 1위에 오르는 인기 뮤지컬 ‘번개맨’이 돌아왔다. 번개맨은 2000년부터 방송된 EBS ‘모여라 딩동댕’의 한 코너. 번개맨은 ‘조이랜드’의 악당 나잘난과 더잘난의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해내는 캐릭터다. EBS 번개맨 프로그램은 공개방송으로 진행된다.
뮤지컬은 2012년 처음 시도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위키드, 시카고 등 해외 유명 뮤지컬과 비교해서도 지지 않을 정도의 티켓 파워를 갖고 있다. 캐릭터 상품이 옷, 장난감, 생활용품에까지 파고들었고 중국에까지 수출된 한류 콘텐츠이기도 하다.
번개맨의 인기 비결은 뭘까. 공연 연습이 한창이던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EBS방송센터에서 번개맨을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 서지훈(37)을 만났다. 서씨는 2013년부터 2대 번개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합니다. 인기를 실감하세요?
“아이들 프로그램의 ‘사람’ 캐릭터 중 가장 인기가 많다고 들었어요. 주 시청층인 5∼7세 아이들에게 ‘친구’를 넘어서 ‘영웅’이라는 존재를 알려주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위험에서 구해주는 영웅을 따르고 좋아하는 거죠.”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에는 사람 캐릭터가 아예 나오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조연급이다. 인기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을 보면 뽀로로는 펭귄, 코코몽은 원숭이, 타요는 버스, 폴리는 변신 자동차다. 동물이나 자동차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선악 구도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번개맨은 선악구도가 확실하고, 실제 사람이 등장해 악을 물리친다는 게 다른 애니메이션과 다른 점이다. 잘못된 습관, 위험한 행동은 ‘악’으로 분류된다.
번개맨 연기는 그래서 ‘바르게’ 해야 한다. 표준어를 써서 또박또박 발음해야 하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야 한다.
“성인 뮤지컬에서는 ‘뭘 해주길 바래’라고 할 수 있지만 어린이 뮤지컬에서는 ‘뭘 해주길 바라’라고 해야 해요. 리얼리티를 살리기보다 설명을 해줘야 하죠. 교육적인 면이 중요하니까 특히 발음을 신경 써서 하고 있습니다.”
‘영웅’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것도 많다. 번개맨 옷으로 갈아입으면 마인드도 번개맨이 돼야 한다.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보고 본 그대로 판단한다. 자칫 아이들을 실망시키거나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 바른 인성을 보여주는 것도 번개맨의 역할이다.
“관객을 웃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누군가를 놀리는 거예요. 재밌게 하자고 무대 위에서 누군가를 놀리면 ‘번개맨이 아이들을 놀려?’ ‘친구를 놀리는 건 괜찮은 거야?’ 하는 반응이 나올 수 있어요. 그래서 농담을 할 때도 ‘이렇게 말해도 되나?’ 하고 꼼꼼히 따져보게 됩니다.”
서지훈은 ‘원효’ ‘내사랑 내곁에’ 등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연기했던 뮤지컬 배우다. 185㎝의 큰 키에 반듯한 외모, 성량 좋은 저음의 목소리를 가졌다. 서지훈이 번개맨으로 합류하면서 뮤지컬 무대가 더 다채로워졌다.
“어린이 뮤지컬은 설명적이고, 음악도 단순한 편이에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야 하니까요. 제가 번개맨을 맡고 난 뒤부터 무대장치나 음악에서 작품성을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가족 뮤지컬로써 성인 관객도 함께 볼만한 공연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죠.”
당분간 번개맨 활동에 매진할 계획이지만 성인 뮤지컬이나 연극, 방송에 도전하려는 마음도 크다. “공개방송 일정과 정기적인 뮤지컬 공연 때문에 다른 일을 같이 하기가 쉽진 않아요. 그래도 다양한 작품으로 역량을 쌓고 관객과 만나고 싶어서 계속 찾아보고 있습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어른도 함께 볼 수 있는 ‘번개맨’ 만들겁니다”… 뮤지컬 ‘번개맨’ 연기 뮤지컬 배우 서지훈
입력 2015-07-29 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