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면 한은은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게 된다. 한은의 유동성 지원을 받은 1번 은행이 대출을 늘리면 돈이 돌게 되고 돌던 돈은 2번 은행의 예금으로 유입된다. 예금이 증가한 2번 은행이 대출을 늘리면 결국 3번 은행의 예금이 증가한다. 통화량 지표는 이렇게 늘어난 예금을 모두 더해 결정된다. 따라서 통화량이 증가하면 예금과 대출이 같이 증가하게 된다. 이것이 통화창조의 과정이다.
최근 일부에서 가계부채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한은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한편으로 저금리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라고 주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계부채가 왜 이리 늘어나느냐고 지적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기는 하다. 비가 와야 된다면서 땅이 젖는다고 타박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결국 빚이 증가한다. 물론 미시적으로 볼 때 경제주체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빚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문제는 빚 갚을 능력이다. 사실 자금을 조달하고 나서 이를 잘 활용해 원하는 목적을 이루면 빚 갚을 능력이 늘어나게 되니 대부분 자금이 필요한 주체는 일단 자금을 제공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빚을 제공하는 금융기관의 입장은 다르다. 금융기관은 사전적으로 빚 갚을 능력을 검증해야 한다. 능력이 검증돼야 대출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할 때 ‘필요’에 따라 빚을 조달하고 싶어 하는 자금수요자와 ‘능력’을 검증한 후 빚을 제공하는 금융기관 간에 일종의 괴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유동성이 늘어나는 저금리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너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되자 금융정책 당국이 최근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았다. 금융기관이 ‘필요’보다는 주로 ‘능력’ 위주로 가계대출을 집행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는 LTV나 DTI 규제를 강화한 것과 유사한 정책효과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반발도 만만치 않다. 언제는 빚내서 집 사라고 하더니 이제 왜 빡빡하게 구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완화적 통화정책 하에서 미시적인 정책을 통해 가계부채 부문의 팽창 속도를 줄이는 것은 나름대로의 절충적 정책이다. 비가 오면 우산회사 주가가 올라가고 날씨가 맑으면 아이스크림 회사 주가가 올라간다. 이 두 주식값을 같이 올라가도록 하기는 어렵지만 비가 올 듯 흐린 상황에서 기온이 높고 더우면 아이스크림과 우산이 다 잘 팔릴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금번 조치로 인해 부동산 경기의 상승세를 꺾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실물경제가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 혼자 독야청청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담보가치보다는 소득을 중심으로 신용도를 평가해서 대출 집행을 강화함으로써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관리하는 것이 금번 대책의 핵심이라고 할 때 정책의 타이밍이나 목적이 상당 부분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유연성도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목표를 수정해가면서 순발력 있게 대응하면 일관성이 떨어지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유연성이 부각되면서 더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뇌관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1700여만명의 차주가 1100조원의 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큰 거 한방’ 식의 정책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이를 꾸준히 관리해가면서 지속적이고 다양한 접근을 해야 한다. 금번 조치의 시행이 향후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창현(서울시립대 교수·전 금융硏 원장)
[경제시평-윤창현] 가계부채 대책 적절하다
입력 2015-07-29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