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부른 국정원의 ‘과거’… 검찰, 실체 밝힐까

입력 2015-07-28 02:58

야당에서 민간인 해킹 의혹이 있다며 국가정보원을 고발한 사건이 27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김신)에 배당됐다. 전문성 측면에서 첨단범죄수사부가 사건을 맡으리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공안2부의 국정원 도청사건 수사이력 등이 더 크게 고려됐다.

국정원은 이탈리아에서 사들인 해킹 소프트웨어가 오직 대북정보 수집용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많은 국민은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국정원이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검찰의 강제수사를 받기는 2005년 이후 10년 만이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줄곧 부인하던 대국민 사찰 의혹을 사실로 입증하는 성과를 올렸다.

◇국정원의 전과(前過)=“불특정 다수의 국민이 잠재적 피해자다. 정부 발표에 따라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대다수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다.” 2005년 12월 14일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문민정부 시절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미림팀’을 운영하며 국내 정·재·언론계 주요 인사 1800여명을 불법 감청했다고 발표했다. 수사를 총괄 지휘한 검사는 현재 국무총리인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었다.

국정원이 고급 술집의 여주인 수십명을 망원(網員)으로 두고 주요 인사의 대화를 녹음한 일, A4용지 반쪽에 적힌 감청 내용이 친전(親展) 봉투에 밀봉돼 매일 국정원장에게 보고된 사실 등은 큰 파장을 낳았다. 무엇보다 국정원의 모든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1998년 언론의 의혹 제기 이후 국정원 간부들은 국정감사에 나와 “정치인 등의 불법 감청은 없다”고 한결같이 강변했었다. 99년 중앙일간지에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오”라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번 의혹이 좀체 진정되지 않는 이유는 이런 국정원의 전과 때문이다. 국정원이 이날 내국인 불법 사찰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민주노총 등 8개 시민단체는 이병호 국정원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정원은 현 정부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검찰 수사에 직면한 상태다. 2013년 대통령선거 댓글 개입 사건으로, 지난해 간첩 증거조작 사건으로 검찰의 특별·진상조사를 받았다. 국정원이 부인하던 많은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수사 애로점은…=2005년 도청수사팀은 “보안의식이 투철한 정보기관 직원들의 수사라서 실체적 진실 접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소회했다. 그나마 당시에는 대통령의 수사 의지가 컸고, 국정원이 불법 전화감청을 인정하는 발표를 했었다. 반면 이번에는 국정원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데다 핵심 단서가 부족하다.

정치권의 고발 내용은 언론의 의혹 제기를 되풀이한 수준이며, 해킹 장비가 불법적으로 사용된 증거는 뚜렷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앞선 3번의 사례처럼 검찰 특별수사팀이 꾸려지지도 않았다. 정쟁으로 연결될 의혹마다 정치권이 검찰의 신뢰를 빌리려 한다는 점도 검찰로서는 그리 유쾌하지 않다.

검찰은 일단 국회의 진상조사를 지켜보며 고발인 조사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드라이하게, 단서가 나오는 대로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는 로그파일을 삭제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정원 임모 과장의 통화내역 조사에 착수했다. 자살 당일인 지난 18일 0시부터 시신이 발견된 시점까지 수·발신 내역 일체가 확인 대상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을 종결하려 했으나 검찰로부터 ‘통화내역 조사를 통해 사망자가 지인들에게 자살 동기를 언급했는지 조사하라’는 지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