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영토 문제로 극한대립을 벌이던 중·일이 이전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관계 정상화로 치닫고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방미 외교를 계기로 ‘미·일 신밀월’ 시대를 연 데 이어 ‘중·일 신밀월’까지 나아가고 있다. 반면 우리 외교는 대미(對美)뿐 아니라 대중(對中) 관계에서도 이전 성과에 안주하는 양상이다. 정체와 답습, 지나친 원칙주의 고집에 따라 ‘한국 외교 고립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三菱)머티리얼이 지난 24일 중국인 강제노동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약속한 건 건 중·일 관계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미쓰비시는 앞서 미국 영국 호주 등 서방국가 피해자들에게도 사과 입장을 내놨다. 지금까지 일본은 아시아 침략으로 인한 피해사실 인정에 미온적이었음에도 미쓰비시가 중국 피해자에 사과한 것 자체가 양국 관계회복을 바라는 아베 정권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양국 정상회담 때까지만 해도 중·일 관계가 회복세였던 건 아니다. 당시 두 나라는 영토와 역사인식에 관한 4개항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갈등의 불씨는 전혀 꺼지지 않았다.
이후 중·일 간에는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관계 회복세가 돌발변수로 무너지지 않도록 두 나라가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이다. 중국은 일본 국내에서 각종 악재가 불거져도 ‘원칙적인 우려’ 입장만 개진할 뿐 격렬한 비난을 삼갔다. 일본의 집단자위권법 통과 및 ‘중국 위협론’을 강조한 일본 ‘2015년 방위백서’ 공개에도 중국은 제한적 비판만 제기했다.
특히 중국은 아베 총리의 종전 70주년 기념 담화(아베 담화)의 내용 조율을 시도하는 점도 주목해볼 만하다. 양제츠 중국 국무위원은 아베 총리 핵심측근인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 방중 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자제 및 ‘무라야마 담화’ 계승 등을 내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명목상으로는 오는 9월로 예정된 중·일 정상회담 전제조건이었지만, 아베 담화에 대한 중국 측의 ‘가이드라인’이라는 해석이다.
이미 아베 총리는 과거사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존중하겠다고 밝히며 그간의 수정주의적 역사인식을 상당부분 완화한 바 있다. 야스쿠니 신사도 2차 내각 출범 1년 만인 2013년 12월 한 차례 참배했을 뿐 직접 방문은 삼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기조만 유지해도 중국의 ‘합격점’은 받는 셈이다.
아쉬운 건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달 수교 50주년을 맞아 관계 회복의 계기를 맞기는 했지만, 중국이 적극적인 대일(對日) 외교 공세로 중·일 관계의 주도권을 잡은 것에 비하면 초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베 담화가 올 하반기 최대 외교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중·일 정상회담 카드를 쥐고 있는 중국과 달리 우리 정부는 능동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거의 없는 상태다. 특히 아베 총리가 담화에서 한국을 배제한 채 중국을 특정한 ‘반성’ 또는 ‘사죄’ 입장을 내놓을 경우, ‘외교적 고립’을 넘어 ‘외교적 실패’라는 비난이 쏟아질 전망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각별히 신경써온 대중(對中) 관계마저 일본에 추월당했다는 비판 또한 예상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中-日 ‘리스크’ 관리하며 新밀월… ‘한국 고립론’ 다시 고개
입력 2015-07-28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