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이 최근 정부의 잇단 기업 사정(司正) 움직임에 대해 작심하고 비판에 나섰다. 김 회장은 무역협회와 한국능률협회가 27일부터 나흘간 제주 신라호텔에서 주최한 하계 최고경영자 세미나 기조강연에서 정부가 무리한 사정으로 기업인의 사기를 꺾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경제 활성화를 강조하는 정부가 경제 활성화의 주역인 기업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을 동시에 벌이는 것은 국정운영의 일관성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검찰은 여러 기업에 대한 동시다발적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시작된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된 검찰 수사는 착수한 지 만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시작 단계여서 언제쯤 수사가 마무리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 21일에는 민영진 KT&G 사장이 계열사 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6월에는 국내 화장품 업계 1위 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김 회장은 이처럼 전방위로 확산 중인 검찰의 기업 사정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선 “기업 또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수사나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근거에 입각한 최소한의 수사에 그쳐야 하며 근거 없는 루머나 투서인이 스스로를 밝히지 않은 음해성 투서 등을 근거로 하는 수사는 지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사 행태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김 회장은 “수사기관이 본래 수사하고자 했던 사건에 대한 혐의가 해소되면 즉각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다른 사건이라도 찾아서 수사 결과를 관철하려는 기존 수사 관행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사 진행이 기업 활동을 본질적으로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김 회장은 특히 정부와 수사기관을 향해 “기업의 각종 활동이나 기업인의 진퇴 문제를 정권과 연계해 보는 접근법은 기업과 기업인의 사기를 꺾는 것으로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김 회장의 ‘정권 연계’ 발언에 대해 ‘포스코 수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의 포스코 수사의 경우 청와대 뜻에 따라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또 전 정권에 대한 군기잡기를 목적으로 기업 수사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검찰이 MB정권 당시 벌어진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 수사를 박근혜정권에서 진행하면서 다수의 건설사가 수사선상에 오른 것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도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검찰 간부, 법무장관을 거친 황교안 총리가 경제와 정무, 사정이 조화를 이루는 수준 높은 행정 운영을 통해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노력을 뒷받침해 달라”고 주문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경제정책팀장은 “검찰의 기업 관련 수사 내용은 정치 관련 비자금 조성이나 횡령, 담합 등 실제 문제가 많은 부분에 대해 이뤄지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스스로 준법과 공정거래를 지키려는 노력은 등한시한 채 정부나 사회가 기업을 옥죈다고만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검찰은 기업인 수사를 비판하는 재계 여론에 대해 “증거를 따라가는 수사”라는 입장이다. 현대 기업 범죄가 점점 치밀해지고, 사회적 악영향이 확대된다는 점도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재계의 여론에 맞서는 부분이다.
노용택 이경원 기자 nyt@kmib.co.kr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 “政, 무리한 사정으로 기업 사기 꺾어”
입력 2015-07-28 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