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르호보암 시대의 성벽이 틀림없다니까요. 이 토기들이 BC 10세기 당시를 입증하고 있잖아요!”
세계 성서고고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르호보암 성벽이 3000년 만에 깨어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26일(현지시간) 오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40㎞ 떨어진 ‘텔 라기스(Tel Lachish)’ 발굴 현장. 북쪽 경사면 해발 255m 지점에서 작업 중이던 ‘텔 라기스 한국 발굴단’(단장 홍순화 한국성서지리연구원장) 강후구(서울장신대 교수) 발굴실장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후 최고 온도는 섭씨 39도. 구름 한 점 없는 성지(聖地)의 여름 햇볕 아래에서 작업하던 발굴단원들의 얼굴은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됐다. 이날따라 몰아친 먼지바람은 평소보다 서너 배 많은 흙먼지를 만들었다. 해지기 직전, 마침내 3000여년 전 토기 조각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주전(BC) 10세기 남유다 왕국 르호보암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돌로 된 성벽이 한국인 성서고고학 발굴단에 의해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다. 르호보암 시대의 성벽은 지금까지 세계 성서 고고학계에는 알려진 적이 없어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발굴은 한국교회 성서고고학자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라기스는 여호수아가 점령했던 도시국가 중 하나로 성경에는 24번 언급된다. 예루살렘에 이어 2번째로 큰 성읍이며, 다윗의 손자이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남유다의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베들레헴· 에담·드고아·헤브론 등 13개 성읍과 함께 요새화했으며(대하 11:5∼12), 주전 701년 히스기야 왕 시절엔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 공격 이전에 라기스를 포위하기도 했다(왕하 18∼19장).
이번에 발견된 성벽은 너비 3m의 돌 성벽이다. 각각 20∼30㎝ 크기의 잡석으로 7∼8층 규모로 축조돼 있었다. 성벽 옆에서는 당시 사용된 대접과 단지 등으로 보이는 토기 조각들이 출토됐다. 대접은 두께가 3∼5㎜이며 단지는 지름이 30∼40㎝ 정도로 추정된다.
강 실장은 “출토된 토기의 구연부(rim)와 몸체는 주전 10세기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며 “적색 덧입힘으로 표면을 장식하고 불규칙적으로 손 마름질을 한 토기가 발견돼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발굴로 성경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이 입증된 것”이라며 “르호보암 시대 사람들의 삶을 좀더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라기스의 총 면적은 6만5000㎡(1만 9697평)에 이른다. 1932년부터 3차에 걸쳐 세계 고고학계가 발굴 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르호보암 성벽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한국 발굴단에 의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사막 기후인 이스라엘은 지대가 높거나 물이 있는 지역에 도시를 건설하면 이후 전쟁으로 파괴되더라도 그 위에 흙을 덮고 또 다시 도시를 구축했다. 이렇게 되면 지층이 형성되면서 역사의 흔적이 ‘시루떡’처럼 남는다. 홍순화 발굴단장은 “이런 지형을 현지어로 ‘텔’이라 부른다. 알파벳으로 ‘tell’이라 표시하는데 역사가 ‘말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냐”고 했다.
한국 발굴단은 2013년 라기스 북쪽 능선에 대한 시험 발굴을 시작,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발굴 작업을 한 결과 페르시아(바사) 시대부터 아마샤(유다왕국) 시대까지의 성벽을 발견했다. 발굴단은 내년에도 르호보암 시대의 건물과 성벽 전체에 대해 광범위한 발굴을 실시할 계획이다.
공동발굴 책임자인 요셉 가르핀켈(히브리대 고고학) 교수는 “르호보암 시대의 성벽 발견으로 BC 10세기 유다왕국에 대한 연구가 좀더 명확해질 것”이라며 “한국 발굴단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라기스(이스라엘)=글·사진 신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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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발굴단, 3000년 전 ‘르호보암 성벽’ 첫 발견
입력 2015-07-2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