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료 압수수색, 영장에 없는 증거 수집 안돼”… 大法, 디지털 정보 무차별 압수수색 제동

입력 2015-07-28 02:57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범죄 혐의자의 디지털 저장매체를 압수수색하다 새로운 범죄의 단서를 찾았다 하더라도 영장 범위를 넘어서는 증거라면 수집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디지털 증거 수집 범위는 철저히 영장 내에 머물러야 하며, 디지털 정보를 복제·탐색·출력하는 모든 과정에서 당사자와 변호인에게 참관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구체적 기준이 처음 제시됐다.

제약사 직원 이모씨는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수원지검은 2011년 4월 영장을 발부받아 이씨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씨 컴퓨터의 저장매체를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에 넘겼고, 그 안의 내용을 복제했다. 이씨는 이 절차에 동의했고, 복제 과정까지 직접 지켜보다 임의로 자리를 떴다. 여기까지는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복제된 이씨의 저장매체 내용을 검사가 다시 복제해 확인하다 벌어졌다. 배임 혐의 외에도 약사법과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의 단서가 발견됐다. 검사는 영장에 적시된 배임 혐의 관련 정보와 함께 다른 범죄단서 관련 정보도 출력했다. 이씨나 변호인은 이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에 이씨는 “위법한 압수수색을 취소해 달라”며 법원에 준항고를 제기했다. 법원은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검찰의 압수수색 절차 전체를 취소했다. 검찰은 법원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수원지검이 이씨에 대해 실시한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이 위법해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디지털 정보 압수수색도 영장에 적시된 범죄 혐의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컴퓨터나 서버 등 저장매체에는 범죄 혐의와 관련 없는 개인의 일상이나 기업경영에 관한 정보가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어 디지털 정보가 다른 범죄의 수사 단서로 위법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이씨 사례처럼 저장매체의 용량이 워낙 방대해 현장에서 필요한 증거만 추려내기 어려운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사기관이 저장매체를 통째로 가져가 복제하고 필요한 증거를 탐색·출력하는 과정에 당사자나 변호인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혐의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의 임의적 복제 등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탐색 과정에서 우연히 새로운 범죄에 대한 단서를 발견했다면 즉시 추가 탐색을 중단해야 한다는 기준도 내놨다. 별도의 범죄 혐의에 대해 다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해당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씨 사건의 경우 최초 복제 절차는 적법했지만 이후 당사자의 참여 없이 검사가 해당 디지털 정보를 다시 복제하고 영장 범위를 넘어선 정보를 출력한 점은 위법하다고 봤다. 다만 김창석·박상옥·권순일 대법관은 일부 절차의 위법 때문에 영장 범위 내에서 당사자 동의 하에 적법하게 실시된 압수수색까지 모두 취소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