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거래’가 쓴 커피 맛이라면 ‘베테랑’은 시원한 사이다 맛이라고 할 수 있어요. 둘은 완전히 다른 영화예요. ‘부당거래’는 사회 이면의 아린 곳을 파고들었지만 ‘베테랑’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영화를 보고나면 기분이 뻥 뚫리는 통쾌한 액션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베테랑’의 류승완(42) 감독은 전작 ‘부당거래’(2010)와의 차별성을 계속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당거래’의 주연배우 황정민과 유해진이 ‘베테랑’에 그대로 출연해 후속편이라는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베테랑’은 광역수사대 행동파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안하무인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범죄행각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이야기다. 유해진은 조태오를 보좌하는 최 상무 역을 맡았다. 죄를 짓고도 유유히 빠져나가는 조태오를 잡기 위해 막판까지 달려가는 서도철에게 조용히 손을 떼라는 압력이 여기저기서 들어온다. 이 과정에서 펼치는 액션의 대결구도가 경쾌하고 오락적이다.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펼쳐 보이는 짜릿한 액션과 그런 와중에서도 킥킥 웃음 나게 하는 류 감독의 연출솜씨가 돋보인다. 집단 화병과 무기력에 걸린 현실, 분노가 극에 달한 환경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재벌 3세. 류 감독은 “조태오가 특정인을 모델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캐릭터는 많다”고 했다. 이를 통해 우정과 의리가 무엇이고, 용기와 정의가 뭔지 보여주고 서민적인 주인공이 결국엔 승리하는 걸 지켜보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영화는 의식주의 필수항목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관객이 자발적으로 온전히 2시간 동안 결박당하는데, 그만큼 의미나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죠.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주제는 아니더라도 영화를 본 관객 중 한 명이라도 나중에 커서 서도철 같은 형사가 됐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류 감독은 청룽(성룡) 영화를 좋아하는 액션키드로 대부분 장면을 컴퓨터그래픽(CG) 없이 촬영한다. 배우들이 이쪽 옥상에서 저쪽 베란다로 뛰어내리고, 주먹과 발길질을 주고받고,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실감나게 찍었다. 명동 8차선 도로에서 벌어지는 차량 추격전이 하이라이트다.
“티가 나면 안 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CG를 쓰지 않아요. 오토바이와 차량이 충돌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사고가 나서 액션배우가 크게 다쳤어요. 영화가 뭔데 사람을 이렇게 다치게 하나 싶었어요. 그럴수록 이 친구가 자부심을 느낄 만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는 ‘베테랑’이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배우들의 영화라고 규정했다. “배우들에게서 많이 배웠어요. 황정민은 부당한 걸 못 참는 성격이에요. 사람이 너무 뜨거워요. 사는 건 건조해서 자신을 위해 쉬는 시간이 없어요. 유아인은 재수 없는 캐릭터인데 연기에 몰입하는 태도가 좋았어요. 지나치게 저돌적이긴 하고요. 유해진은 어떤 배역이든 걱정이 없어요.”
‘베테랑’은 흥행 질주 중인 ‘암살’과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 이어 8월 5일 개봉된다. 관객몰이 싸움의 작전에 대해 물었다. “물론 잘 되기를 바라죠. 하지만 얼마 들었다, 천만을 예상하느냐 등 숫자 얘기가 나오면 거부감이 들어요. 영화를 보는 이유가 감정을 갖고 소통하는 건데 무슨 주식상품도 아니고….”
류 감독은 차기작으로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이자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을 빚은 하시마(端島)를 배경으로 하는 ‘군함도’(가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베테랑’ 들어가기 전부터 시나리오 개발을 하고 있던 작품이에요. 사진 한 장을 봤는데 극적인 사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눈빛이 빛났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꽉’ 막힌 가슴 ‘뻥’ 뚫어드립니다… ‘베테랑’ 연출한 류승완 감독
입력 2015-07-29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