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봅시다] 농축산물, 김영란법서 빼달라는데… “취지 훼손” 우려도

입력 2015-07-27 02:41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의 구체적인 적용 대상·범위를 규정하는 시행령 마련을 앞두고 선물용 농축산물의 부정금품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농축산업계는 수수 금지 대상에 10만원 이상 한우·과일세트나 5만원 이상 화훼류 등이 포함될 경우 농축산물 판매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선물 수요가 크게 위축돼 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26일 농협에 따르면 전국 축산업협동조합장들은 지난 22일 농협 안성팜랜드에서 축산 현안 간담회를 갖고 ‘김영란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국내산 농축산물을 수수 금지 금품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청하는 건의문을 채택했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은 원활한 직무 수행과 통상적 사교·의례·부조 목적의 음식물·선물 등의 가액 범위를 시행령(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조합장들은 건의문에서 “국내산 축산물이 부정청탁 금품수수 대상에 포함된다면 축산 강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등 시장 개방 확대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축산업과 축산인들에게 또 한번의 아픔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특히 “명절에 주고받는 한우 선물세트의 경우 90% 이상이 10만원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면서 “이러한 국민적 정서와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시행령 제정 작업이 이뤄진다면 수입 농축산물은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국내 시장을 더욱 잠식해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축산업계뿐이 아니다. ㈔제주감귤연합회 등 농협 31개 품목별전국협의회 회장단도 지난 17일 같은 취지의 건의문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했다. 화훼단체협의회는 최근 성명에서 “2012년 권익위가 3만원 이상 축하난을 뇌물로 규정하면서 화훼산업이 몰락하기 시작했다”면서 “여기에 부정금품 수수 대상까지 추가하는 것은 국내 농축산업을 말살하는 규제”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농축산업계가 ‘김영란법’에 강한 우려를 표하는 것은 명절 선물용 판매가 전체 판매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농협 축산경제리서치센터는 한우의 경우 설과 추석 명절 때 도축되는 비중이 평월 대비 1.5∼1.6배 높다고 분석했다. 과일 역시 과수농협연합회 조사결과 연간 사과 유통량의 35∼40%, 배는 60∼70%가 명절에 소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란의 핵심은 허용가능 금품 대상 기준이다. 한국법제원은 지난 5월 시행령 제정을 위한 제1차 공개토론회에서 화훼류 5만원 이상, 음식물 및 선물 5만원 이상, 과일·한우세트 등은 10만원 이상을 금품수수 대상 기준으로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축산경제리서치센터가 지난해와 지난 설 명절 농협 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유통된 한우 선물세트의 가격대별 비중을 조사한 결과 10만원 이상이 93%에 달했다. 과일 선물세트는 5만원 이상이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인 금품수수 문화를 차단해 청렴도를 높이자는 ‘김영란법’의 취지에 비춰볼 때 예외 규정을 섣불리 확대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 문제 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가능 금품의 기준을 품목에 따라 현실화하는 방안 등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권익위는 지난 15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시행령 마련 온라인 토론회를 통해 접수되는 의견을 고려해 8월 말 시행령 입법예고안을 공포할 계획이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