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났던 살인죄 공소시효가 이른바 ‘태완이법’의 지난 24일 국회통과로 아예 사라졌다. 이제 살인을 저지른 자는 잡히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게 됐다. 여론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른 강력범죄에도 태완이법을 적용하자거나,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면해주는 공소시효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맞서 공소시효 제도의 다른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반박도 나온다.
◇범죄자 인권? 피해자 고통에 비할 바 아냐=공소시효 제도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범죄자의 인권도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살인을 저질렀지만 수사기관에 잡히지 않은 범죄자는 적어도 25년을 숨어 살아야 했다. 기본권 중 일부를 포기한 채 노심초사하며 살았을 그 시간을 처벌의 또 다른 형태로 볼 수도 있다는 논리다.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난 범죄자에 대해서는 법적 안정성을 보호해줄 필요가 있다는 고민이 제도의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태완이법 논의 과정에서 여론의 공감을 받지 못했다. 1999년 5월 대구 효목동 골목에서 황산테러를 당해 49일 만에 세상을 떠난 김태완(사망 당시 6세)군과 부모의 고통 앞에서 범죄자 인권, 법적 안정성을 운운하는 자체가 사치스럽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대검찰청의 한 간부는 26일 “태완이법 국회통과는 살인죄 같은 반인륜적 범죄자에게 허용하는 온정이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반인륜 범죄에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는 나라가 많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전범을 아직도 추적하고 있다. 대부분 90세가 넘은 노인이 됐지만, 모살(謀殺) 등 중대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독일 사법제도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직접 가담한 자는 물론이고, 수용소 경비원이던 존 데먀뉴크에게 2011년 유죄를 선고한 뒤부터 단순 공모자도 적극 체포·처벌하고 있다. 미국도 대다수 주에서 공금횡령이나 사형·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는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는다.
◇‘태완이법’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기대=다만 공소시효의 존재 이유를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선 실효성의 문제다. 어떤 범죄든 시간이 지나면 증거는 왜곡되거나 사라진다. 물적 증거뿐 아니라 기억에 의존하는 진술도 희미해지거나 잊혀지거나 왜곡되는 일이 흔하다. 수사가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같은 이유로 억울하게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이 결백을 증명하는 것 역시 점점 힘들어진다. 오판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장기미제로 분류된 사건들이 풀기 힘든 ‘난제’로 누적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검찰과 법원은 장기미제 사건을 엄격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실제 태완군 사건의 마지막 용의자로 지목된 이웃주민 A씨를 검찰은 ‘증거부족’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태완군의 부모가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무작정 몇십년 지난 장기미제 사건까지 모두 수사하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살인죄 공소시효가 사라지면서 장기미제 살인사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은 2010∼2014년 기준으로 연평균 3.2건이다. 매년 3건씩 수사기관의 손을 떠났을 사건이 처리대상 사건으로 쌓이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사기관의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이다.
반면 발달한 과학수사기법 등을 감안하면 이런 우려를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17년 전 대구에서 발생한 여대생 정은희양 사망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2011년 성매매 권유 혐의로 붙잡힌 스리랑카인 K씨의 DNA가 사망 당시 정양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해 K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검찰이 1998년 한국에 체류했던 스리랑카인을 전수조사해 증인을 찾아내면서 다음 달 중순 결론이 내려지는 항소심 재판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경찰은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의 인력을 50명에서 72명으로 늘리는 등 태완이법 통과 이후 달라질 수사체계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기획] 공소시효 ‘순기능’은 없었나… 살인죄 시효 폐지 확정됐지만 일각선 기대 속 우려 목소리도
입력 2015-07-27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