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동부지법 법정에 준특수강도미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33)씨가 들어섰다. 판사 앞에 선 그는 “고생만한 아내에게 부담을 안겨 미안하다. 가족 품으로 돌아가 부끄럽지 않은 가장으로 최선을 다해 살겠다”며 눈물 섞인 최후진술을 했다. 재판부(형사12부·부장판사 김영학)는 이례적으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그를 석방했다. ‘선처’에는 피해자 안모(53)씨의 도움이 컸다. 이 강도범과 피해자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김씨는 6년간 손꼽아온 결혼식을 지난 5월 30일 치를 예정이었다. 양가 부모의 반대로 식을 올리지 못한 채 아내와 아이 둘을 낳고 살다 어렵게 결혼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지난해 3월부터 중소기업에서 일했는데 둘째가 태어난 그해 11월 받은 월급이 마지막이었다. 회사가 어려워져 지난 2월 퇴직 때까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결혼식을 불과 한 달여 앞둔 4월 14일 김씨는 빈집이라도 털자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배낭에 과도를 챙겼다. 서울 광진구의 가정집 초인종을 세 차례 누른 뒤 인기척이 없자 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갔다. 안방에서 자고 있던 집주인 안씨가 그를 발견하고 의자를 집어 들었다. 당황한 김씨는 현관문을 찾아 뒷걸음치며 안씨를 향해 과도를 휘두르다 도망쳤다.
김씨는 결국 경찰에 검거됐고 조사 과정에서 ‘결혼식’ 사정을 털어놨다. 기독교 신자인 안씨는 김씨의 딱한 처지를 듣고 그의 가족들을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전도했다. 이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까지 냈다. 재판부는 “사전에 범행 도구를 챙기는 등 죄질이 나쁘다”면서도 “즉시 발각돼 재산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결혼식 비용 없어 강도… 그를 구해준 ‘용서’
입력 2015-07-27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