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시즌 8호 골… 박주영 살아있네!

입력 2015-07-27 02:45

후반 37분 윤주태가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파고든 뒤 몰리나(이상 FC 서울)의 패스를 받아 크로스를 날렸다. 이후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볼은 인천 유나이티드 수비수 김진환의 몸에 맞고 굴절되면서 골문으로 향했다. 이때 골문으로 쇄도하던 서울 공격수 박주영(사진)이 넘어지면서 발끝으로 볼을 톡 건드렸다. 가만히 놔둬도 골이 되는 상황이었다. 뜻하지 않게 윤주태의 골을 가로챈 꼴이 된 박주영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검지로 윤주태를 가리켰다. ‘너의 골’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서울 팬들은 부활한 ‘축구 천재’ 박주영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박주영은 지난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과의 2015 K리그 클래식 23라운드 홈경기에서 팀이 1-0으로 앞서 있던 후반 37분 쐐기골을 터뜨렸다. 리그 6호 골이었다. 서울은 박주영의 활약에 힘입어 2대 0으로 이겼다.

박주영은 서울에 복귀한 이후 4개월여 만에 8골(FA컵 2골 포함)을 터뜨렸다. 특히 7월에만 정규리그 3골과 FA컵 2골을 합쳐 5골을 몰아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줬다.

지난 3월 11일 박주영의 입단 기자회견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재기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너무 큰 상처를 입은 후 K리그로 돌아온 탓이었다. 박주영은 2005년 K리그에 데뷔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2008년 AS 모나코(프랑스)를 통해 유럽 진출에 성공한 박주영은 아스날(잉글랜드) 진출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왓포드(잉글랜드)와 셀타 비고(스페인), 알 샤밥(사우디아라비아) 등을 거치는 동안 부진에 시달렸다. 더욱이 병역 기피 논란에 휩싸인 데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선 ‘의리 축구’의 중심에 놓이면서 팬들로부터 멀어져갔다.

고립무원에 빠진 박주영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최용수 서울 감독이었다. 최 감독은 지난 시즌부터 골잡이의 부재로 애를 먹었다. ‘몬테네그로 특급’ 데얀이 중국으로 떠나면서 생긴 공백을 메울 수 없었다. 수비 축구로 근근이 버티던 최 감독은 박주영에게 눈을 돌렸고, 서울로 돌아온 박주영은 최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최 감독과 박주영의 관계는 최강희 전북 감독과 이동국의 관계와 유사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도전했다가 부상 등으로 실패를 맛보고 2008년 K리그로 돌아온 이동국은 성남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팀과 궁합이 맞지 않아 또 한 번 좌절했다. 2009년 전북 유니폼을 입은 이동국은 최 감독의 배려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최 감독은 2009 시즌을 앞두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 있던 이동국을 닦달하는 대신 “20경기 동안 골을 넣지 못해도 널 빼지 않을 테니 부담 없이 뛰라”고 격려했다. 그 결과 이동국은 2009 시즌 32골을 넣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최 감독도 지친 심신으로 돌아온 박주영에게 기회를 준 뒤 묵묵히 기다렸다. 그러자 골 감각이 살아난 박주영은 서울의 골잡이로 거듭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