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전석운] 끊이지 않는 美 ‘묻지마 살인’

입력 2015-07-27 00:20

미국에선 최근 ‘묻지마 살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유서 깊은 흑인교회에 난입한 20대 백인 청년이 성경공부를 하고 있던 신자들에게 총을 난사해 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달 16일에는 테네시 채터누가 해군모집센터 앞에서 아랍계 미국인 20대 청년이 ‘람보’처럼 돌아다니며 총을 갈겨대 병사와 경찰 등 5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 1주일 후에는 루이지애나 라파예트의 한 영화관에서 50대 백인 남성이 관객들에게 총알을 뿜어대 2명의 여성을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묻지마 살인이 줄을 잇자 미국 시민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이 어느 순간 살인자로 돌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막연한 공포를 키우고 있다. 백화점이나 지하철, 교회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묻지마 살인은 배후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범행동기가 뚜렷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응징을 하거나 예측을 하기도 어렵다. 미국 정부는 채터누가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테러’로 간주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테러단체와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해 당혹해하고 있다. 범인이 요르단에서 머무는 동안 재워줬다는 이유로 그의 삼촌이 억류돼 조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체제나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세력이 없자 공권력이 무기력해진 상황이다.

미국에선 최근 20년간 살인사건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러나 희생자가 3명 이상인 ‘다중 살인’은 상대적으로 증가했다. 2000년 이후 발생한 다중 살인 사건만 160건이다. 전문가들은 다중 살인이 늘어나는 원인과 배경으로 사회적 고립의 증가를 꼽았다. 가해자들은 학교나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약물에 의지하면서 사회성이 더욱 떨어지고 판단능력이 흐려졌다. 분노와 불안은 충동적 살인으로 이어졌다.

미 샌디에이고주립대 심리학과 진 트웬지 교수는 최근 20년간 발생한 다중 살인사건을 분석한 뒤 범인들이 사회적 고립에 빠진 나르시시스트(자기애가 강한 이기주의자)들이었다고 진단했다. 타인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욕구가 범행 동기에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스테츤대학 심리학과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는 가해자들의 공통점이 사회적 실패자들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학교에서 실패하고, 직장에서 실패하고, 결혼생활에 실패하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됐다. 만나서 흉금을 털어놓을 친구도, 도움받을 곳도 없어서 분노와 불안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퍼거슨 교수는 미국이 장기적으로 미국인들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스이스턴대학의 폭스 교수도 이 제안에 공감했다. ‘극단적 살인: 연쇄 다중 살인의 이해’를 펴낸 폭스 교수는 사회적 고립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웃에 대한 관심과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묻지마 살인은 우리나라도 자유롭지 않은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얼마 전엔 유영철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았다는 흉악범죄자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7월 울산에선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은 23살 청년이 홧김에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흉기로 찔러 죽였다.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분노와 화풀이 식 처벌이 일회성으로 지나가고 만다.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분석과 대책은 찾기가 어렵다. 우리도 정신건강 관리시스템을 확충하고,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