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통일의 한반도 여름 여행

입력 2015-07-27 00:20

수도권은 물 폭탄, 남부권은 태풍인데 중부권에 사는 친구네는 햇볕 쨍쨍하단다. 한 친구가 “‘반반도’도 참 넓어!”라고 해서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한반도가 제대로 되면 얼마나 넓을 거야?” 금방 한반도 화제가 이어진다. “아, 개마고원 가고 싶어라!” 나는 부르짖는다. 개마고원, 새하얀 원산 해변 등 자연의 풍광만큼은 고대로 있으리라. 본 적도 없다. 주옥같은 문학작품들을 읽고 반했던 나의 로망 공간들이다.

통일이 되면 뜨거운 여름에도 찾아다닐 곳들이 얼마나 많으랴. 비행기 타고 갈 필요도 없고 해외에서 돈을 뿌릴 필요도 없다. 백두대간을 다 걷지는 못하더라도 소설 ‘토지’에서 구천이와 별당아씨가 숨어들었던 묘향산을 찾아볼지도 모른다. 개성의 황진이가 말년을 소요했다는 금강산 계곡에서 시를 읊을지도 모른다.

길고 긴 한반도이니 피서 여행이든 피한 여행이든 백두산에서 제주까지 가지각색으로 가능할 게다. 풍토에 따라 다양한 작물들이 풍성할 것이고 다채로운 문화들이 피어날 것이다. 물론 한반도 여행을 맘껏 하자고 통일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구체적인 로망이 살아 있어야 통일에 대한 로망도 살아 있게 되고, 로망이 있어야 실제적인 통일에도 다가갈 수 있을 것 아닌가?

최근의 남북관계를 보면 증오가 판친다. 로망을 키우는 노력은커녕 ‘증오 마케팅’이 성행한다. 실제적인 공포의 존재에 비해 공포 마케팅은 지나치다. 이런 현상은 북한에 대한 증오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갈등에 대한 증오로까지 번질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극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광고 카피가 유행하는 시대이지만, 남북 관계 개선에 이렇게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하는 듯한 정부가 정상은 아니다. 그런 정부를 그러려니 내버려두는 언론 역시 정상이 아니다. 이 비정상을 파고들어오는 것이 증오 마케팅이다. 사람이건 사회건 증오 에너지로써는 절대로 더 나은 미래를 키워낼 수가 없으니, 한숨이 나올 뿐이다.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