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기] 칼퇴근

입력 2015-07-27 00:10

얼마 전 주말, 아내 친구들이 주축인 부부 모임에 나갔다. 아내 네 명은 모두 교사인데 남편들 직업이 교사와 자영업자, 공무원, 직장인 등 제각각이었다. 우리는 어느 가족이 더 행복하고 불행한지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대기업에 다니는 누군가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며 투덜댔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많은 월급을 받는 그였지만 퇴근이 늦다고 했다. 그가 전한 에피소드 하나. 긴 근로시간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사장이 정시 퇴근을 지시했다. 오후 6시가 되면 사무실 인터넷과 전원을 끄고 퇴근을 종용했다. 제때 회사를 나가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와 함께 외식비가 지급됐다. 직원들은 기뻐했을까? 반대였단다. 과중한 업무를 마치기 위해 일거리를 들고 근처 커피숍이나 모텔로 갔다. 셧다운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다시 회사로 몰래 들어가 업무를 마무리하느라 예전보다 더 퇴근이 늦어지는 불상사마저 생겼다.

모임의 또 다른 누군가가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는 쪽도 괴롭다”고 말했지만 “돈이 있는데도 즐기지 못하는 고통이 더 크다”는 말이 이어졌다. 우리는 결국 칼퇴근이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2163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OECD 2위다. OECD의 평균이 1770시간이니 어마어마한 차이다. 또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가진 부모 10명 중 6명 이상이 정시 퇴근을 하지 못한다는 조사도 있다.

정시 퇴근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움직임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고 있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개최한 정시 퇴근 문화 정착을 위한 포럼에서는 매주 수·금요일 오후 7시 컴퓨터 전원을 꺼버린다는 은행이나 근무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해 1주일에 40시간 일한다는 공공기관의 사례 등이 소개됐다. 직장인이 시간에 맞춰 일하는 건 마치 먹어야 산다는 명제처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잘 쉬어야 다시 뛸 수 있다.

김상기 차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