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성공보수 무효 판결] “법에 따라 풀려났는데 ‘성공’ 운운 부적절”

입력 2015-07-25 02:00

대법원은 성공보수 약정이 무효라고 판단하며 변호사 업무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은 국가형벌권의 실현이라는 공적 가치를 기본으로 한다. 형사사건의 결과를 대가로 돈을 주고받는 성공보수는 이런 공적 가치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기소·불구속이 과연 ‘성공’이냐”=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먼저 ‘성공보수금’이란 명칭에 주목했다. 형사사건 성공보수에서 ‘성공’의 기준은 피의자가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기소되더라도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이미 기소된 경우에는 무죄 판결이나 집행유예형을 받는 것이 통상 성공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국가형벌권의 공적 실현인 수사와 재판의 결과를 놓고 단지 피고인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성공이라 칭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만약 죄가 있는데 성공에 해당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이는 마땅히 받아야 할 처분을 부적절하게 모면해 사법정의를 훼손하는 행위가 된다. 반대로 죄가 없다면 무죄 선고는 당연한 결과인데, 의뢰인은 당연한 결과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성공보수를 지급하게 됐다는 억울함과 원망을 갖게 된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두 경우 모두 ‘성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성공’이란 결과가 변호사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형사사건은 검사와 판사의 재량이 상대적으로 넓게 인정된다. 대법원은 “변호사가 수사나 재판의 담당자에게 직간접 영향을 행사하려는 유혹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뢰인은 변호사가 부적절한 방법을 써서라도 결과를 바꿀 수 있으리란 그릇된 기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정당한 수사·재판 결과마저 청탁 등 부당한 영향력에 따른 것으로 오인되고, 사법체계 전반의 신뢰 실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해외 여러 국가도 성공보수 약정을 금지하고 있다. 성공보수 관행이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미국 사법부는 변호사가 배심원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을 금지한다. 프랑스도 19세기부터 변호인과 형사사건 당사자가 같은 이해관계를 가져선 안 된다며 허용하지 않고 있다. 독일과 영국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성공보수 약정을 허용하고 있지만 성공보수금은 우리나라에 비해 적다.

◇‘착수금+시간제 보수’로 바뀔까=‘착수금+성공보수금’의 변호사 수임료 공식은 정부 수립 이후 꾸준히 유지돼 왔다. 대법원도 판례를 통해 성공보수금을 원칙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지나치게 높은 수임료 문제가 불거지면서 성공보수금이 도마에 올랐다. 19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약정을 금지하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을 심리하면서 쟁점이 성공보수의 정당성 문제임을 선고 시점까지 아예 공개하지 않았다. 사건 당사자인 변호사가 상고를 취하해 선고를 내릴 수 없는 상황을 방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뒤집힌 판례는 대법원이 판결을 선고한 23일부터 적용된다. 이제 변호사와 맺은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정당한 약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23일 이전에 맺은 약정에는 소급해 적용되지 않는다. 민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계속 유효하다.

법조계는 당장 착수금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변호사들이 못 받게 된 성공보수금을 착수금에서 충당하려 하리란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착수금은 결과와 무관하게 지급하는 돈이어서 액수가 성공보수금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레 변호사 비용 과다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성공보수 약정 대신에 다른 약정을 맺게 되리란 분석도 나온다. 일한 시간만큼 보수를 받는 ‘시간제 보수 약정’ 등이 대표적이다. 재판에 출석한 횟수나 재판에서 신문한 증인 수만큼 추가 보수를 받는 약정 등이 새로운 변호사 보수체계로 언급되고 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