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 日 미쓰비시의 ‘두 얼굴’… 美 이어 中 노동자에도 사과·보상 한국만 제외

입력 2015-07-25 02:38
오카모토 유키오 미쓰비시 머티리얼 사외이사가 지난 22일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한국만 뺀 채 중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출신 강제 징용자에게 사과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회사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중국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 강제징용 피해 미군 포로들에게 사과한 데 이어 두 번째다. 하지만 이번에도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해 논란이 예상된다.

24일 일본 교도통신과 중국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미쓰비시 머티리얼 측은 강제 징용됐던 중국 노동자 3765명에 대해 1인당 10만 위안(약 1870만원)의 기본 피해 보상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일본 대기업이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에게 사과와 함께 피해 보상금을 주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강제노역 피해보상 대상 인원도 역대 최다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쓰비시 머티리얼과 중국 측 협상팀은 다음 달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전후해 베이징에서 만나 최종 화해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다.

당초 ‘1972년 중·일 공동성명에 따라 중국 정부와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을 내세우며 중국인 피해자들의 요구를 외면했던 미쓰비시가 입장을 바꾼 것은 ‘전범기업’의 이미지를 없애는 것이 중국 시장 개척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중국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하는 아베 신조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아베 총리는 지난 16∼18일 자신의 외교 책사인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을 중국에 보내 다음 달 발표하는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 문제와 정상회담 등을 모색했다. 이는 최근 집단자위권 법안 논란으로 급락한 지지율을 뒤집기 위한 카드로 해석된다.

반면 미쓰비시 측이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서 “법적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가 중국인에 비해 훨씬 많은 데다 관계개선의 흐름을 탄 중국과는 달리 강제징용,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을 놓고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일 관계 영향도 크다.

일본 정부도 ‘식민지 시기 조선인 강제징용은 국제노동기구(ILO)가 금지한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으며, 한국인 개인의 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 종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 법원에서 진행 중인 미쓰비시 중공업의 강제노역과 관련한 소송에 미칠 영향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