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파라면 전시장을 공항으로… ‘천개의 플라토 공항’전

입력 2015-07-27 02:02
설치 작품 ‘미수취 수하물’(2005)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마이클 엘름그린(왼쪽)과 잉가 드라그셋. 공항 터미널의 환경을 구체적으로 재현한 두 작가는 “예술이 예술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걸 추구한다”고 말했다. 삼성미술관 플라토 제공
작품 출발(2014). 전광판에는 목적지 항공편의 취소(Cancelled), 연착(Delayed)을 알리는 내용이 뜬다. 관객은 미술관 아트숍을 개조한 면세점에서 작가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향수, 주류, 화장품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여름 휴가철이다. 사정에 따라 어느 집은 공항으로 향할 것이며, 또 어느 집은 국내의 산이나 바다를 찾아 힐링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여행지로 떠나기 전, 혹은 그곳에서 돌아와 휴가기간의 자투리가 있다면 전시장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여행이 물리적인 장소 이동이라고 할 때 이를 가장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하는 것은 공항이다. 또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며 ‘와유(臥遊)’의 시간 갖는다면 영혼을 살찌우는 내면으로의 여행이 될 것이다. 그렇게 외부로 향하거나 혹은 내부로 향하는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이 두 전시를 권한다. 하나는 유럽 작가들의 전위적인 설치미술이고 다른 하나는 묵향 그윽한 옛 그림 전시다. 전시 내용과 외양은 대비되듯 다르지만 하나 같이 성찰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같다.

서울 중구 삼성미술관 ‘플라토’의 유리 건물은 건축적으로 공항을 연상시킨다. 이에 착안해 북유럽의 현대미술 듀오 작가 마이클 엘름그린(54·덴마크)과 잉가 드라그셋(46·노르웨이)이 전시장을 공항 터미널로 만들었다. 두 작가는 공항의 건축구조를 정교하게 전시장에 반영했다. 체크인과 보안검색 구역, 탑승대기, 탑승구역, 수화물 수취구역과 면세점 구역까지 사실적으로 배치했다. 비행기 티켓 형태의 입장권을 들고 국제선 이착륙 시간 안내 전광판을 보노라면 마치 수십 분 후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이륙할 것 같은 기분에 빠진다. 면세점(Duty Free)과 탑승구(Gates 21-69) 중 어느 쪽을 먼저 갈까 선택하는 재미도 있다.

공항을 그대로 재현했다면 미술이 아니다. 현금지급기, 휴게시설, VIP라운지, 장애인 휠체어 등 모든 공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익숙한 시설을 작품으로 슬쩍 비틀어 배치했다. 그래서 눈에 익은 그 사물들은 문득 낯설게 다가온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을 연상시키는 길쭉한 인물조각상 ‘여행자’(2015)는 수하물 마냥 다리 부분이 비닐로 꽁꽁 싸여 있다. 현금지급기 옆에 버려진 아기바구니(‘모던 모세’, 2006)는 사연에 궁금함을 갖게 한다. 바의 음료대(‘뒤집힌 바’, 2014)는 뒤집혀져 있으니 사용이 불가능하다. 수하물 수취구역에선 주인이 찾지 않는 캐리어가 끊임없이 돌아간다. 검색대를 통과하는 여행 가방의 엑스레이 사진이 작품처럼 거대하게 걸려 있고 수류탄과 악어 등 반입금지 물품은 석고작품처럼 희게 칠해져 진열장에 고이 모셨다.

작품은 이렇듯 고정된 해석을 거부한다. 제목이 ‘천개의 플라토 공항’인 것은 그런 이유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티리의 저서 ‘천개의 고원’에서 따왔다. 두 작가는 “예술이 예술처럼 보이지 않는 걸 추구한다. 약간 이상한 느낌에서 오는 질문, 거기서 예술이 출발한다”고 말했다.

자유를 즐기러 떠나는 공항에서 우리는 왜 이런 낯선 경험과 마주해야 하는 걸까. 엘름그린은 지난 20일 기자와 만나 “미술관과 공항은 유사한 점이 많다. 제약이 많은 곳이며, 사람들이 통제된 방식으로 움직인다. 미래사회의 모습이 이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공항이야말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통과하는 곳이다. 하지만 한 번 더 돌아보면 공항은 새로운 해석을 하게 한다. 공항은 저마다 다른 해석을 통해 의미가 확장되고 유동적이게 된다. 드라그셋이 “작품은 여러분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실제 공항이 갖는 의미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 찾아간 공항에서 여러분은 이번에 어떤 새로운 의미를 만날 것인가. 전시는 여행지만이 아니라 공항에서도 성찰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두 작가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전시장 안에 개인주택을 넣은 작품으로 특별상을 받았다.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전시는 10월 18일까지(02-2014-6552).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