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불법주차로 견인된 택시 뒷좌석에 있는 숨져있는 운전기사를 5일 만에 그의 아들이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견인 기사에게는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절도 시비가 많아서 견인 기사가 차량 안을 잘 살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그렇겠다’라고 이해가 가면서 동시에 의아함을 갖게 되었다.
확실히 경험은 어떤 원칙이나 지침을 만들어낸다. 이 중 올바른 지침으로 검증된 것만 모아 정리하면 바람직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 견인 기사가 차량 안을 잘 살피지 않는 관행적 지침은 바르지 않은 지침임을 알 수 있다. 지침은 자연적으로 생기지만 다 올바른 것은 아니므로 검증이 필요하다.
우리가 모범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켜 FM대로 했다고 말하는데 FM이 무엇의 약자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FM은 미군에서 사용하는 Field Manual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일반적인 용어로 번역하자면 ‘현장 지침서’가 될 것이다. 미군의 FM 장점은 그것이 이론과 탁상공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경험과 시행착오를 충분히 고려하여 만들어진 현장에 특화된 지침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여러 재난에서 적절한 대응 지침이 없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나쁜 경험과 반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경험에서 터득한 것을 실질적인 지침으로 옮기는 것이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다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지침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그 지침을 하나하나 검증해야 한다.
지침은 자세할수록 좋긴 하지만 양이 너무 많아선 안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주객이 전도되어 무엇을 위한 지침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조항을 지키는 것에 연연해하는 잘못된 습성이 생길 것이다. 지침은 단순한 조항으로만 전달되어선 안 되며 그 조항이 중요하게 여기는 원리와 의미를 충분히 같이 전달해야 한다. 시대와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조항은 바뀔 수 있으며 근본 원리가 잘 담겨 있는 지침서는 그러한 개편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대표적인 지침은 구약성경의 여러 지침이며 흔히 율법이라고 말한다. 율법과 십계명은 비록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앞서 말한 현장 지침서의 특성을 잘 담고 있다. 물론 단순히 조항으로만 익힌다면 본래의 의미와 다른 식으로 조항을 고집할 수 있다. 십계명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역사 특히 출애굽의 과정을 알아야만 한다. 즉 조항에 담겨 있는 응축된 경험의 본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이 율법을 설명하실 때에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 19:8)와 같은 표현을 쓰시기도 하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단 조항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침을 세우고 검증하여 정리하는 사람들은 여러 상반된 주장을 정돈하는 일을 맡게 되는데 상당히 괴로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현장에 적합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두고 이 일을 감당하며 애쓰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남들처럼 앞에 서서 인정받는 일은 아니지만 묵묵하게 이 일을 감당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그들을 격려해주기 바란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의원>
[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검증된 지침이 필요하다
입력 2015-07-25 0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