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년 전 ‘예수님과 함께 한 저녁식사’라는 책에 마음을 빼앗긴 건 순전히 제목이 주는 친근한 매력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예수님과 마주앉아 먹는 밥은 얼마나 맛있을까? 어쩌면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체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체하면 바로 예수님께 낫게 해달라고 하면 그만이라는 어린아이 같은 상상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식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을 가지고 좋은 포도주를 만드실 만큼(요 2:10) 탁월한 미각의 소유자이며 혼인잔치의 흥이 깨지지 않도록 세밀히 주위를 돌보시는 분위기 메이커로서 예수님은 당시 유대사회에서 멸시를 받던 세리들과 함께 하셨던 식사자리를(막 2:14∼15) 통해 복음 안에서 일어나는 식탁의 교제와 힐링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보여주었다.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했던 사람들이 단지 포만감만을 느끼고 돌아가지는 않았으리라. 상처 입은 영혼이 치유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래의 자기를 찾아 돌아가는 창조와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마츠오카 조지 감독의 ‘심야식당’(深夜食堂)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행할 수 있는 치유적 관점의 목회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영화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심야식당은 별도의 이름 없이 도쿄 번화가의 좁은 뒷골목에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영업하는 작은 식당이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에 깡패와 야간업소 종업원, 게이 등 밤을 낮 삼아 사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식당주인이 만들어준 소박한 밥상을 받는다.
음식을 먹으면서 손님들은 상처받은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끄집어낸다. 식당안의 다른 손님들은 주인과 함께 옆 사람 얘기를 들어주면서 치유공동체의 일원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영화 속 힐링은 세 가지의 특징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일어난다.
첫째, 작은 공간이 갖는 친밀함의 특징이다. 심야식당은 채 열 명이 앉기에도 비좁은 공간이다. 식당주인이나 손님 가릴 것 없이 일어나 손을 내밀면 누구와도 악수를 할 수 있을 만큼 협소하다. 그런데 친밀한 관계는 짧은 물리적 거리와 상호작용한다. 즉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내지만, 또한 가까이 하다보면 친밀해지는 법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작은 공간에서 내면적 안정감을 갖기 쉬우며 마음을 여는 개방적인 소통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둘째, 영화 속 힐링의 특징에는 음식이 중심에 있다. 누구에게나 ‘소울 푸드’라 부를 수 있는 음식이 있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가 하면 향수를 달래줄 수도 있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면서 허탈한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음식은 최상의 치료약이기도 하다. ‘심야식당’의 손님들이 찾는 메뉴는 기껏해야 계란말이나 토마토케첩을 이용한 초 간단 일본식 스파게티라 할 수 있는 나폴리탄 정도지만 이 음식들은 최고의 만족도를 자랑한다.
마지막 특징은 ‘심야식당’을 단순한 음식점이 아닌 힐링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한 식당주인의 역할이다. 영화에서 그는 ‘마스터’로 불린다. 마스터(고바야시 가오루)는 한쪽 눈에 칼로 베인 깊은 상처가 있지만 대단히 선한 사람으로 손님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끝까지 귀기울여준다. 우리는 그에게서 상처 입은 치유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공간이지만 예수와 함께 한 식사라면 몸과 영혼이 어찌 건강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진구<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교수·영화평론가>
[강진구의 영화산책] ‘심야식당’서 발견한 힐링 목회
입력 2015-07-25 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