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일권(고려신학대학원) 박사와 인터뷰를 하며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겸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사진)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2005년 프랑스 지식인의 최고 명예이자 ‘불멸의 40인’으로 불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종신회원에 들어갈 정도로 탁월한 학자라고 했지만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회심하거나 기독교에 긍정적 관심을 갖게 된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정 박사의 소개로 자료들을 찾아봤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이탈리아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지아니 바티모였습니다. 바티모는 지라르와의 대담집인 ‘기독교, 진리 그리고 약한 신앙: 대담’에서 “‘예수께서는 인간 폭력의 무고한 희생자로서 신성화된 것이 아니라 마지막 희생양으로서 인류를 구원했다’는 지라르의 통찰에 의해 기독교로 이끌렸다”고 증언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 역시 지라르의 간접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라르는 1966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비평언어와 인간과학’이라는 제목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는데 이 대회에 데리다가 참석합니다. 데리다는 지라르와 직접 교류는 없었지만 지라르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후기 현상학자 겸 탈무드 해설가 레비나스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지라르는 자신의 책에서 레비나스에 대해 종종 언급했고 2012년 프랑스 파리에서 지라르 학파와 레비나스 학파가 함께 학술대회를 열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비슷한 색깔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 박사는 “무신론자였던 데리다가 노년에 신앙고백까지 한 것은 레비나스와 교류하면서 지라르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데리다는 노년에 윤리적, 종교적 전환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의 저서 ‘죽음의 철학’에서 해체주의 철학을 윤리와 종교 관계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데 아브라함과 이삭의 희생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무신론자로 살았던 데리다는 유대교 전통에 근접하면서 할례(circumcision)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confession)을 연결해서 ‘써컴페션(Circumfession)’이라는 말까지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신앙고백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독일의 대표적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도 지라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버마스는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신화와 제의’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사회철학자인 하버마스가 신화에 대해 강연한 데에는 ‘신화’ 전문가인 지라르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버마스는 2005년 발간된 저서 ‘세속화의 변증법과 후기세속적 사회’에서 기독교 전통의 유산에 대해 변호했습니다. 이 책에서 하버마스는 “개인적 양심 도덕,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가 파생된 보편주의는 기독교의 사랑과 윤리의 직접적 유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무신론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한국교회도 이제 ‘지라르 읽기’에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
[미션쿡] 무신론 데리다·하버마스… 지라르의 통찰에 ‘신앙’ 수용
입력 2015-07-24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