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스페인 축구스타 카를레스 푸욜의 슈팅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지난해 은퇴한 뒤 한 번도 공 차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였기에 세계 축구팬의 관심을 끌었다. 영상 속 푸욜은 축구 골대 대신 특수 제작된 양궁 과녁을 향해 슛을 했다.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자며 한국에서 시작된 기부 캠페인 ‘슛포러브(Shoot for Love)’에 동참한 것이었다. 무릎수술 후유증에 다리가 불편했지만 10번 시도해 67점을 기록했다.
◇한국판 아이스버킷, 사랑의 슛을 쏘다=슛포러브는 사회적 기업 비카인드(Be Kind)가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히딩크재단, 게임개발업체 플레이독소프트 등과 함께 지난 4월 8일 시작했다. 첫 주자는 안정환 전 국가대표 선수였다. 지난해 비카인드가 진행했던 ‘슛포러브-페널티킥’에서의 만남이 인연이 됐다. 당시 비카인드는 전국을 돌며 도심에 작은 축구장을 만들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페널티킥 이벤트를 열어 1골당 5000원씩 기부금을 적립했다. 유지태, 션 등 유명인과 많은 시민의 동참으로 5000골(2500만원)을 넘겨 소아암 어린이 5명을 치료했다.
올해 진행 중인 슛포러브는 주로 축구선수를 대상으로 했다. 축구에 양궁을 접목시켜 슛이 과녁을 맞히면 1점당 1만원씩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전달된다. 선수들이 낸 점수만큼 백혈병소암협회와 플렝독소프트가 치료비를 부담하는 방식이다. 세계적 기부 열풍을 일으켰던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참가자가 다음 참가자를 공개 지목해 계속 이어지도록 했다.
54점을 기록해 54만원을 기부하게 된 안정환은 송종국(축구해설가) 기성용(영국 스완지시티) 김성주(아나운서)를 지목했다. 송종국은 이정협(상무), 이정협은 지소연(여자 국가대표), 지소연은 김진수(독일 호펜하임), 김진수는 백승호(스페인 FC바르셀로나 B팀)를 택했다.
FC바르셀로나 주장이었던 푸욜은 ‘후배’ 백승호(18)의 지목을 받았다. 슛포러브에 참여하는 13번째 선수이자 첫 해외 선수였다. 김동준 비카인드 대표는 “세계적 선수가 소아암 어린이를 위해 부상 중에도 기꺼이 나서줘 감동했다”며 “슛포러브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푸욜이 첫 테이프를 끊어줬다”고 말했다.
푸욜은 슛을 마친 뒤 소아암을 앓고 있는 한국 어린이 ‘영빈이’의 이름을 부르며 “꼭 완쾌돼서 함께 축구하자”는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스페인 국가대표 시절 동료인 세자르 아즈필리쿠에타, 다비드 비야,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도르트문트팀 감독이었던 위르겐 클롭을 다음 참가자로 지목했다.
◇‘맨땅에 헤딩’이었던 푸욜 섭외…슛은 계속된다=23일 현재 슛포러브로 1000만원 넘게 기부금이 모였다. 지난 넉 달간 참여한 선수는 14명. 지목된 사람 중 25명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비카인드가 지목된 이들을 일일이 섭외해야 하는 터라 현실적 제약이 많다. 그러던 차에 성사된 푸욜과의 만남을 김 대표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백승호 선수가 지목한 푸욜에 대해 갖고 있던 정보는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것뿐이었다. 은퇴한 터라 소속팀도, 에이전트도 없었다.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이었다. 수소문 끝에 푸욜의 SNS 계정을 알아냈고, 거기서 그가 영어학원에 다닌다는 걸 알게 됐고, 바르셀로나의 그 학원 앞에 가서 며칠을 기다린 끝에 푸욜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15일 슛포러브에 동참한 아즈필리쿠에타는 소속팀 첼시의 프리시즌 투어를 위해 캐나다로 출국하기 직전에 연락이 닿았다. 비카인드는 아즈필리쿠에타 고향까지 가서 그의 친구로부터 에이전트 연락처를 얻어 만남을 성사시켰다.
아즈필리쿠에타는 무척 바빴다. 시간을 내기 어려워 그의 단골 미용실 앞 주차장에서 슛포러브를 진행했다. 6, 7번 연습 끝에 그는 74점을 기록했다. 참가 선수 중 4위에 해당하는 높은 점수였다. 그는 마지막 시도에서 10점 과녁을 맞히자 환호하며 한국의 소아암 어린이에게 꼭 완쾌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렇게 좋은 이벤트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 세계 모든 이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아즈필리쿠에타는 팀 동료 에당 아자르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후안 마타, 아르헨티나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 그리고 ‘스페인의 전설’이라는 라울 곤잘레스를 다음 참가자로 지목했다. 김 대표는 현재 라울을 만나러 미국에 가 있다.
이런 캠페인을 하는 이유를 묻자 김 대표는 “한국 어린이의 사망원인 질병 1위가 소아암인데, 소아암 투병 아이들에게 소원을 물으니 ‘다시 밖에서 축구하고 싶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기획] 한국판 아이스버킷… 안정환도 푸욜도 ‘사랑의 슛’
입력 2015-07-24 03:23 수정 2015-07-24 0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