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국정원 호구 만들기?

입력 2015-07-24 00:10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이스라엘의 모사드를 정보기관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 같다.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뒤 언론 기고문 등을 통해 모사드를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평가했고, 국정원장으로 복귀해서도 내부 인사들에게 이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탐사전문 작가가 전현직 모사드 요원 200여명을 인터뷰해 비밀 작전 등에 대해 기술한 ‘기드온의 스파이’(2010년)란 책을 공동 번역하기도 했다.

흔히들 모사드와 이란의 사바크를 비교한다. 국가 안위와 자국민 보호가 최우선인, 그래서 국민 지지를 받는 모사드와 체제 유지, 반대파 탄압 및 제거를 위한 철권통치 기구였던 사바크. 사바크는 이란 왕정체제 붕괴와 함께 흔적도 없어졌다. 과거 ‘흑역사’로 국정원은 모사드보다는 사바크 쪽이었다. 이 원장도 2013년 언론 기고문에서 ‘정보기관이 아니라 대통령의 국정을 보좌하는 권력형 정무기관으로 악용해 왔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그런 원죄 때문에 국정원이 지금 뭇매를 맞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식 의혹을 주장하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이를 증폭시켜도 마치 사실처럼 돼버린다.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본 파일을 보여주겠다는 무리수까지 나오는 것이다. 이는 ‘현영철 고사포 처형 정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확인했는지를 밝히는 것’과 같다. 기자도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는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다.

정보기관 활동이란 결국 ‘정직한 이들이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을 하는 것’(메이어 다간 모사드 국장·2002∼10년)이다. 이는 보호돼야 마땅하다. 해명이 길어지면 결국 기밀과 조직·기능을 노출하게 된다. 정보기관원들의 집단 성명 발표도 비정상적이다. 냉정하게 조사하고 불법에는 분명하게 책임을 지우고, 어떻게 민주적 통제를 가할 것인가를 논의하면 된다. 무차별 의혹 증폭은 국정원을 글로벌 정보 커뮤니티에서 ‘호구’로 만드는 자해행위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