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최범선 용두동교회 목사] ‘잠잠함’의 미덕

입력 2015-07-24 00:20 수정 2015-07-24 08:53

요즘 사람들은 말을 참 잘하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못하고 다하고 사는 세상인 듯싶다. 그래서인지 어디를 가나 말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발생하기도 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해 곤혹스러운 처지에 처하는 이들도 쉽게 발견된다. 오래 전 한 말이기에 말을 한 당사자는 잊고 있는데 그 말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글로 쓴 것은 잘못되면 지우고 다시 쓸 수 있지만 한 번 발설한 말은 수정할 수 없기에 말로 인한 고통을 당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높은 지위,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는 말이 더욱 중요하다.

예로 가정을 생각해보자.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는 가족이 있을까. 가족 구성원 모두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정은 없을 것이다. 가족이기에 때로는 속아주기도 하고, 답답하지만 참아주기도 하며,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지켜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는 다 같을 것이다. 살아온 삶의 과정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모든 공동체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공동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규범과 그 규범에 앞선 예의가 필요한 것이다. 서로 존중히 여기는 마음과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예의를 갖춘다면 우리는 아름답고 행복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말을 다하지 않아도 서로를 존중하는 예의가 앞선다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고픈 말을 참지 않고 다하고 난 뒤에는 그 말로 인한 오해와 씻기 어려운 상처가 오래 갈 수밖에 없다.

시편 37편 7절에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에게는 하고픈 말을 참는 자 즉, ‘잠잠이’의 모범이 필요하다. 지도층에 있는 이들로부터 잠잠이의 모범을 보인다면 소란스러운 사회상도 좀 더 차분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편이 기록될 당시에도 악한 꾀를 부려 잘되고 형통하여 성공하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바로 그 시대를 사는 지혜로서 성경은 불평하지 말고, 잠잠하고, 참고 기다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지혜라 여겨진다. 모든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 놓아 불평을 토로하기보다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잠잠이의 지혜를 소유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더 화목하고 서로를 높이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고픈 말을 다하며 살 수 있을까. 모두가 하고픈 말을 다 토설한다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픈 말을 다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불평을 토로하게 되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 상처가 될 뿐이다. 더욱이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미덕 중 하나는 잠잠이로 사는 것이다. 우리 모두 시편 기자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 하고픈 말을 다하기보다 잠잠하게 참고 기다리자. 서로를 높여주고 품어주면서 살만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