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남중] 다시 한 번 ‘2주 휴가’

입력 2015-07-24 00:20

한국인의 장시간 노동은 너무나 유명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지경이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지난해 ‘한국 자본주의’라는 책을 출간한 뒤 발표한 자료 하나만 보자. 장 교수는 1950년대 시작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노동시간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2012년 한국(2163시간)과 비슷한 노동시간이 외국에서는 어느 해에 나타났는지 조사했는데, 1950년 미국(1963시간)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973년 일본(2137시간), 1965년 프랑스(2156시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장시간 노동 문제만 해결해도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풀릴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책이 안 팔리는 것도 이 문제와 연관성을 찾을 수 있고, 정치·문화적 보수화의 원인을 여기서 찾는 시각도 있다.

한국인의 삶에는 저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휴가도 없다.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는데 활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1년 중 가장 긴 휴가라지만 고작 1주일이다. 1주일마저 못 쓰는 이들이 태반이고.

주변에 번듯한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을 봐도 계획된 여름휴가를 즐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휴가 계획은 대개 한두 주 전, 빨라야 한 달 전에 급조된다. 해마다 있는 여름휴가라고 해도 매번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언제 얼마만큼 휴가를 쓸 수 있는지 미리 알 수 있는 직장인들은 행복한 소수에 속한다.

한국에서 휴가는 여전히 사소한 주제로 취급되고 있다. 한국인들의 여름휴가에 스토리가 있을 수 없고 테마가 있을 리 없다. 매년 7월 말∼8월 초 2∼3주간 일제히 참가하는 다급하고 조악한 이벤트에 그치고 만다.

휴가문화로만 보자면 지난 20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이나 지금이나 연간 휴가를 다 소진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고, 여름휴가는 늘 ‘길어야 1주일’이다. 미리 계획된 휴가, 테마가 있는 휴가, 이야기가 남는 휴가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휴가문화를 바꾸려는 시도가 강렬하게 전개된 적이 없지 않았나 싶다. 휴가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된 적도 없는 것 같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2주 휴가제’라고 할 수 있다. 귀화 독일인 이참씨가 2009년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던진 이슈였다. 그는 “이제 한국도 유럽처럼 장기 휴가를 즐길 때가 됐다”고, “최소 2주일은 다녀와야 진정한 휴가라고 할 수 있다”고, 또 “생산성을 노동시간과 동일시하는 건 낡은 산업화 시대의 마인드”라고 말하면서 한국 최초의 장기 휴가 제도라고 할 수 있는 ‘2주 연속 휴가제’를 적극 추진했다.

언론은 그에게 ‘장기 휴가 전도사’란 별명을 붙였고, “한국에서도 ‘휴가 혁명’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만 15세 이상 국민이 1년에 이틀씩만 휴가를 더 가면 3조원의 돈이 풀리고 7만5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보고서 등도 당시 비중 있게 인용됐다. 그러나 이참 사장조차 4년 넘게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2주 휴가를 가지지 못 했다. 이후 2주 휴가제는 동력을 상실해 버렸다. 한국의 여름휴가 풍경은 지난 20년간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시들해졌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2일 부처 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여름휴가를 권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함께 보도된 김 장관의 올 여름휴가는 3일에 불과했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여름을 통과하면서 다시 한번 2주 휴가를 꿈꿔본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