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파마가 잘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열심히 찬양을 따라하면 머리에 열이 오르면서 파마가 꼬들꼬들하게 됩니다. 자, 따라해 보세요.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합시다∼’ 대충 하면 파마가 잘 안 나옵니다.”
25년 동안 ‘파마 전도’를 해온 권정구(52) 인천 하늘상급교회 목사가 미용봉사 현장에서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에게 하는 말이다. 실제로 파마는 열이 가해져야 웨이브가 잘 나온다. 따라하기 쉬운 단순한 찬양을 신나게 인도하는 것이 파마 전도의 노하우다.
권 목사를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국민일보에서 만났다.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수천 명의 머리를 매만진 그의 손은 뭉뚝했지만 온기가 있었다.
권 목사는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세 살 무렵 소아마비를 앓았다. 일어서질 못했다. 경기도 시흥 하중리에서 서울 종로3가까지 부모님이 날 업고 여러 해 동안 한의원을 다니셨다. 그 정성으로 걸을 수 있게 됐다. 지체장애 4급이다.” 그는 오남매 중 셋째였으나 위로 두 누이와 아래 남동생이 일찍 숨졌다. 유년기 그의 가정에는 늘 ‘그늘’이 있었다.
“동네 교회 장로님이 실의에 빠져 있던 어머니께 부흥회에 참석하라고 권하셨다. 어머니는 집회에서 ‘저는 가난한 집에 시집와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왜 제 자식을 셋이나 앗아 가시냐’고 눈물 흘리며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이 어머니께 ‘나를 떠난 것이 죄’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한다. 이날 후 어머니는 신앙생활이 시작했고 우리 가족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됐다.”
그는 인천에서 고교를 다니던 시절 대성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학생부 임원, 성가대 단원, 주일학교 교사 등을 하며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고교생으로 구성된 가나안합창단의 테너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1982년, 대학 진학에 실패해 가출을 했다. “어머니가 날 찾기 위해 생업을 접고 기도한다는 얘길 듣고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그는 방황의 시간 끝에 평택대 신학과에 진학, 1990년 전도사가 됐다. 그 무렵 미용사, 침술사 등으로 구성된 에스더기능선교팀을 따라 봉사를 하러 갔다. 그가 하는 일은 주로 머리를 하러 온 이들을 위해 찬양을 하고, 바닥에 쌓인 머리카락을 쓸어 담는 것이었다. “평소처럼 비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파마를 하고 이발을 하는 동안 ‘꼼짝없이’ 의자에 앉아 복음을 듣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발과 미용 기술을 배우게 된 계기다. 그는 기술을 배운 뒤 매주 사나흘씩 선교팀과 전남 고흥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 전국 농어촌 노인들, 교도소 수감자 등을 찾아다녔다. 한번 가면 20명 정도에게 파마와 헤어커트를 했다. 그리고 찬양을 인도하고 말씀을 전했다.
권 목사는 아워드림선교회를 이끄는 찬양 사역자 전용대 목사와 자주 집회를 다닌다. “소록도에 봉사를 다니던 시절 전 목사님을 만났다. 지난해 나의 첫 음반 ‘저 울부짖는’을 프로듀싱해주셨다.” 1집에 담긴 10곡 중 ‘저 울부짖는’은 권 목사가 작사·작곡을 했다. ‘저 울부짖는 만국의 영혼들이 굶주림에 죽어가고 탄식하며 외친다. (중략) 종들을 깨우사 복음 들게 하시고 만국의 영혼 위하여 달려가게 하소서’라는 노랫말이다. 그는 “필리핀 선교지에서 다리 굵기가 내 엄지손가락만한 아이를 봤다. 세 살인데 굶주려서…. 마음이 정말 아팠다. 그 마음을 담아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대성감리교회에서 만난 그의 아내 이미완(51) 사모는 춤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아가페예술선교단을 이끌고 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다. 권 목사는 이 사모와의 사이에 3남매를 두고 있다. “25년 동안 말씀, 노래, 파마로 전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앞으로 힘이 된다면, 양이 많은데 울타리가 없는 해외 선교지에 교회를 세우고 싶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이야기] 25년 동안 ‘파마 전도’ 권정구 목사 “파마 잘나오려면?… 머리 열나게 찬양하세요”
입력 2015-07-25 0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