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컨테이너가 경찰 초소?… “입주 먼저 하고 보자” 신도시, 치안은 뒷전

입력 2015-07-23 02:42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6단지와 7단지 사이에 22일 컨테이너로 된 경찰초소가 놓여 있다. 경찰은 신도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임시방편으로 이 초소를 마련했다. 김지훈 기자

서울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 불린 강서구 마곡지구. 가양동 공항동 마곡동 발산동에 걸쳐 있고, 아파트 입주가 속속 완료돼 상주인구 2만명을 넘어섰다. 향후 유동인구가 4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알짜 동네의 한 공원에 지난 5월 19일 컨테이너가 하나 들어섰다. 갑자기 설치된 컨테이너는 무엇에 쓰이고 있을까.

◇컨테이너에 의존하는 신도시 치안=20일 밤 마곡지구 6단지와 7단지 사이의 공원 한복판에 폭 10m, 높이 2.5m 컨테이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면에 경찰 마크와 함께 ‘마곡경찰초소’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손잡이를 당겨봤지만 문은 굳게 잠긴 채였다.

주민들은 이 컨테이너의 정체를 잘 모르는 눈치였다. 2단지에 사는 윤모(40·여)씨는 “저녁마다 공원에서 운동하는데 컨테이너에 사람이 있는 걸 못 봤다”며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산책 나온 김모(36)씨도 “왜 갖다 놨는지 동네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했다.

경찰은 이 컨테이너가 ‘임시 초소’라고 설명했다. 지역 인구가 갑자기 늘어 마련한 한시적 치안센터 성격이다. 지난해 8월 마곡단지가 들어서기 전 이곳은 논과 밭이었다. 입주가 본격화되면서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상주인구가 2만1851명이 됐다. 16개 단지 중 9개가 입주를 완료한 상태다.

급속히 늘어나는 인구에 비하면 치안시설은 없다시피 하다. 곳곳의 공터에선 무리지어 술 마시는 청소년이 자주 목격되고, 이삿짐 건설공구 등 절도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3단지 주민 이모(40)씨는 “경찰이 잘 보이지 않고 경찰서·지구대가 멀어 불안하다”고 했다.

마곡지구는 인근 공항·발산·가양지구대에서 관할하고 있다. 2㎞ 떨어진 공항지구대가 그나마 인원이 많아 1명씩 돌아가며 컨테이너에 와서 오후 9시까지 근무한다. 정작 우범시간대인 심야에는 근무자가 없다. 공항지구대에서 마곡지구까지는 순찰차로 10분 이상 걸린다.

400여만원을 들여 만든 컨테이너 초소는 냉장고 에어컨 책상이 전부다. 컴퓨터 등 기본적인 집무시설이 없다. 전화 회선을 신설하려면 2000만원이 든다 해서 전화도 놓지 않았다. 화장실조차 없어 근무자는 근처 복지관을 오간다.

마곡지구 시공사 측에서 치안시설 부지는 마련해 놓은 상태다. 경찰청이 매입해 파출소나 지구대를 지을 수 있다. 강서경찰서는 지난 5월에야 경찰청에 마곡파출소 신설 예산을 신청했다. 언제 완공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초등생 유괴치사 송도신도시 vs 미리 대비한 동탄2신도시=2005년 입주를 시작한 인천 송도신도시에서 2007년 3월 초등학생 유괴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신도시니까 부자가 많겠다’고 생각해 초등학생을 유괴한 뒤 돈을 요구했다. 유괴된 학생은 결국 목숨을 잃었고 시신은 인근 유수지에 버려졌다.

당시 송도신도시에는 입주 1년 반이 넘도록 치안시설이 없었다. 인천 연수구에 있는 송도지구대가 관할했는데 실질적으론 순찰차 1대가 신도시 치안을 전담하는 형편이었다. 송도지구대에서 신도시까지는 차가 막히면 20분까지도 걸리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생 유괴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치안 공백에 대한 주민 분노가 폭발했다. 송도국제도시파출소가 신설된 건 그로부터 다시 1년 가까이 지난 2008년 2월이었다.

2010년 상반기 입주한 인천 청라지구는 마곡지구와 사정이 비슷했다. 1차 입주 인구만 2만2000명이나 돼 치안 수요가 폭증했다. 당시 청라지구 112 신고 건수는 서울 홍익지구대에 이어 전국 2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청라지구를 담당하던 서곶지구대와의 거리는 5㎞가 넘었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서곶지구대 인력을 늘려 대응하다 지난해 3월부터 동사무소 가건물을 빌려 임시 초소를 뒀다. 정식 청라지구대가 들어선 것은 지난해 10월 말이다. 입주 시작 4년 만이었다.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는 비교적 잘된 사례다. 화성동부경찰서는 입주 시작 직전인 올 1월 30일부터 임시 파출소를 운영했다. 마곡지구와 달리 24시간 근무체계를 가동했고, 형사 당직 1개조(2∼3명)를 배정해 신도시 일대를 순찰했다. 경찰 관계자는 “2006년 입주한 동탄신도시에서 치안문제가 대두됐던 적이 있어 동탄2신도시는 철저히 대비했다”고 말했다. 파출소 설치안도 일찌감치 올려 11월이면 완공될 예정이다.

◇도시계획-치안정책 엇박자 해소하려면=신도시가 생길 때마다 치안 공백이 발생하는 건 도시개발과 치안 대책이 따로 추진되기 때문이다. 파출소·지구대를 신설하려면 경찰의 1·2차 심사, 예산 확보, 건물 신축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통상 몇 년이 걸린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신도시 초기 몇 년간은 기존 지구대가 치안 수요를 떠안게 되는 상황이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일선에선 경찰청에 지구대 신설을 신청한 뒤 넋 놓고 기다리는 게 다반사”라고 했다. 한 지구대 경찰관도 “신도시 주민은 불안해하고 민원이 넘쳐나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계획도시라면 도시계획 단계부터 인구, 치안 수요, 우범지역 등을 미리 예측해 도시개발이 치안정책과 맞물려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두 정책의 간극이 커 치안 공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세환 조효석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