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우리가족 납치사건] 일에 치여 파김치가 된 엄마아빠… 자, 한번 바닷가로 납치해 볼까요

입력 2015-07-24 02:20
우리 가족. 도대체 한숨 돌릴 틈이 없이 산다. 매일 아침 출근에 쫒기고 일에 쫒기며 파김치가 되어 사는 아빠. 일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허덕이는 직장맘인 엄마. 어린 나라고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뺑뺑이 도는 하루하루를 산다. 그런데도 수학은 어렵기만 해 수학 문제를 풀려면 머리 속이 숫자로 꽉 차 터질 지경이다. 그런 우리 가족이 납치됐다. 먼저 아빠. 콩나물시루 지하철에 타지 못하고 밀려난 아빠를 납치한 건 아빠의 서류 가방이다. 입을 쩍 벌리고 아빠를 꿀꺽 삼키더니 기차역으로 휙 날아간다. 그러곤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산다. 아빠 어릴 적 소풍 때 먹던 음식을 아빠의 지갑에서 꺼낸 돈으로 산다. 회사에 가야한다고 발버둥치는 아빠를 본체만체. 마지막에 데려간 곳은 바다다.

이번엔 엄마다. 회사에 가려고 현관문을 나서는 엄마를 납치한 건 엄마의 치마다. 훌러덩 뒤집어지더니 엄마를 보쌈 하듯 싸안고 높이 날아가 내려놓은 곳은 바다다. 이번에 내 차례. 칠판 앞에서 수학문제 푸느라 끙끙거리는데 머릿속에서 풍선 바람 빠지듯 빠져나간 숫자들이 나를 실어 나른다. 역시 바다다. 자, 바닷가에서 만난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슨 일은. 그냥 모든 걸 잊고 신나게 노는 거지. 훌러덩 다 벗고. 모든 걸 다 잊고. 마지막 문장이 많은 걸 말한다. “그래도 별일 없었어요.” 바쁜 엄마, 아빠에게 그렇게 좀 쉬자고 아이가 조르는 책 같다. 휴가철이다. 그렇게 모든 걸 다 잊고 일상을 놓아버리길 권하는 그림책이다. 아크릴 물감의 원색과 꿈틀거리는 붓 터치가 신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