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발표한 가계부채 종합 관리 방안은 연간 소득증가율(3∼4%)의 2배 속도(6∼7%)로 급증하고 있는 가계부채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빚 갚을 능력을 초과해 대출하는 관행에 칼을 대고, 고위험 대출은 분할상환 방식으로 유도해 우리 경제의 최대 취약점으로 떠오른 가계부채에 ‘안전망’을 씌우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규제 완화를 1년 더 연장하겠다던 정부가 상환능력 심사를 강화해 실질적인 대출 한도를 줄이는 대책을 낸 것은 일관성 없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상환능력 심사 강화로 대출이 어려워질 저소득층과 다중채무자 등 가계부채 취약계층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없는 것도 ‘종합 관리 방안’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는 평가다.
◇부동산 경기도 살리고, 가계부채 위험도 줄여야 하는 정부의 고육책=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LTV·DTI 조정을 피하면서 상환능력 심사 강화를 통해 실질적으로 가계부채를 억제하는 ‘미시적 수단’을 썼다. ‘스트레스 금리’를 추가로 물리겠다는 방안도 이런 맥락이다. 원리금 상환 부담액이 커지는 효과가 발생해 대출 조건이 까다로워져 변동금리 상품을 고정금리 상품으로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소득 3000만원인 직장인이 주택 구입을 위해 만기 5년, 변동금리 3.5% 일시상환 조건으로 1억원을 대출받을 경우 스트레스 금리가 2% 포인트 추가되면 연간 이자 상환액이 350만원에서 550만원으로 늘어난다.
현재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경우 대출자 상환능력을 심사할 때 스트레스 금리를 2% 포인트 추가 반영한다. 일반 DTI 심사 기준을 통과하더라도 ‘스트레스 DTI’를 통과하지 못하면 대출이 불가능하다. 신용카드 사용액 등 정확성이 떨어지는 자료는 심사를 까다롭게 하고, 국세청 원천징수영수증이나 소득금액증명원 등 실제 소득을 알 수 있는 증빙자료 활용도가 커지면 자영업자나 노년층의 경우 대출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경기 활성화 기조를 해치지 않으려는 것이지만 시장은 정부 정책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1년 전 부동산 규제 완화를 단행했던 정부가 가계부채 총량 위험을 깨닫고 사실상 (규제 완화) 방침을 접은 것”이라며 “이런 ‘롤러코스터’ 식 정책이 거시 안정성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신규 주택담보대출에서 소득 수준이나 주택 가격에 비해 대출금이 클 때는 일정 수준 초과분을 분할상환 방식으로 돌린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주택 가격 3억원에 대출 2억1000만원을 받아 30년간 원금 균등분할 상환을 한다고 가정하면 처음에는 LTV가 70%였지만 연간 700만원씩 상환이 가능해 5년 후에는 상환해야 할 원금이 1억7500만원으로 줄고, LTV도 58.6%로 낮아진다. 기존 대출을 분할상환으로 변경하면 LTV·DTI 비율을 재산정하는 절차를 빼주기로 했다.
◇은행권의 분할상환 대출 관행 정착 유도=정부는 은행권의 대출 구조개선 실적에 따라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출연료를 깎아줄 방침이다.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에는 최저요율(0.05%)을 적용하고, 위험도가 높은 단기·변동금리·일시상환 대출에는 최고요율(0.30%)을 부과해 구조개선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원칙을 담은 은행권 세부 가이드라인도 마련한다.
은행들은 이번 대책에 대해 수익성 악화를 염려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고정금리·분할상환 비중 확대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금리인하 등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며 “은행의 수익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건전성 측면에선 금리 상승을 대비해 나온 정책인 만큼 은행 입장에서도 금리 상승으로 인한 부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계부채 대책의 함정, 취약계층 부채 해결은 늘 뒷전=전문가들은 금융·경제부처만 모여 만드는 가계부채 대책은 종합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고, 위험을 관리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지만 취약계층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없어 발표하는 대책마다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대책의 핵심 내용이 금융권의 건전성 강화에 치우치면서 가계부채 취약계층을 별도로 관리할 수 있는 정책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것은 소득이 적고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저소득층의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라며 “취약계층에 초점을 맞춰 소득을 늘려주고 채무를 조정해주는 방안이 없기 때문에 종합 관리 방안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꼬집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이번 관리 방안은 금융사의 재무적 건전성 확보라는 시각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조명했다는 한계가 있다”며 “과중한 가계부채 부담에 짓눌린 저신용·저소득·다중채무자의 기존 부채에 대한 채무 재조정과 손실분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백상진 박은애 기자 sharky@kmib.co.kr
[가계부채 대책] 부동산 살리면서 가계빚 잡기 딜레마… 역효과 우려
입력 2015-07-23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