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법규 위반’ 美 흑인 여성의 교도소 사망 미스터리

입력 2015-07-23 02:04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도로에서 백인 경찰인 브라이언 엔시니아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꾼 흑인 여성 샌드라 블랜드의 차로 다가가 그녀를 차에서 끌어내리고 있다(위 사진). 블랜드는 경찰의 테이저건 협박을 못 이기고 체포됐지만 교도소에 수감된 지 3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21일 백인 경찰의 테이저건 협박 영상이 공개된 뒤 샌드라 블랜드가 체포된 도로 인근에 그녀를 추모하는 사진과 조화가 놓여 있다(아래 사진). EPA연합뉴스

미국에서 교통 단속에 걸려 체포된 뒤 교도소에 구금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20대 흑인 여성의 체포 당시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백인 경찰이 비무장인 이 여성을 테이저건(전기 충격기)으로 협박하는 장면이 새로 드러나면서 미국 사회 인종차별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2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 CNN방송 등에 따르면 텍사스주 공공안전부는 지난 10일 흑인 여성 샌드라 블랜드(28)가 교통 단속에서 체포되는 과정을 담은 순찰차 카메라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주 경찰관인 브라이언 엔시니아는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바꿨다는 이유로 블랜드의 차를 멈추게 한 뒤 다가가 “매우 화가 나 보인다”며 말을 걸었다. 그가 불쾌감을 표시하는 블랜드에게 퉁명스럽게 “담배를 끄지 않겠습니까”라고 요구하자 블랜드는 “내 차 안에 있는데 담배를 꺼야 할 이유가 없다”며 맞섰다.

차 밖으로 나오라는 요구를 블랜드가 거절하자 엔시니아는 “밖으로 끌어내겠다”며 차 문을 열고 몸싸움을 벌이다 테이저건을 꺼내 블랜드를 향해 겨누면서 “쏘겠어(I will light you up)”라고 외쳤다. 블랜드는 경찰관에게 여러 차례 이유를 물었으나 듣지 못했고, 결국 차 밖으로 끌려나와 수갑을 찬 채 욕을 퍼붓다가 “나는 간질 환자다”라고 주장했지만, 엔시니아는 “좋아”라고만 응수했다.

엔시니아는 체포 보고서에서 “블랜드는 호전적이고 비협조적이었다. 차 밖으로 끌려나와 수갑을 찬 뒤에도 팔꿈치를 휘둘렀다”며 “수갑을 채운 것은 경찰관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으며, 그가 팔꿈치를 휘두르고 발로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고 적었다. 체포 보고서에는 담배를 둘러싼 말다툼이나 테이저건 사용에 대해선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영상이 공개되자 주 상원의원인 로이스 웨스트(민주)는 기자회견에서 “체포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영상을 본 사람은 내게 동의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주 하원의원인 헬렌 기딩스(민주)도 “이 젊은 여성은 지금 살아있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에 살던 블랜드는 지난 10일 모교인 텍사스주 휴스턴 인근 프레리뷰 A&M대학 학생지원센터에서 일을 시작하려고 가다가 교통 단속에 걸렸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 폭행,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체포된 블랜드는 교도소 수감 사흘 만인 지난 1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당국은 블랜드가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규정했지만 텍사스주 월터카운티 지방검찰청의 엘턴 매티스 검사는 “해결되지 않은 여러 의문점이 있다”며 살인사건으로 보고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텍사스주 공공안전부가 그녀의 사망 경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유족들은 독립기관의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도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의견들이 ‘JusticeForSandy(샌드라를 위해 정의를)’ 등의 표제어(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