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伊 해킹팀, 北과도 거래 추진 흔적

입력 2015-07-23 02:26
국민일보가 22일 이탈리아 ‘해킹팀’의 이메일을 분석한 결과 자신들이 만든 해킹프로그램 판매를 위해 북한과 협상한 흔적이 다수 확인됐다. 북한 핵무기 개발에 관심을 표한 이메일 내용 중 하나.

국가정보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사들였던 이탈리아 ‘해킹팀’이 북한과도 협상을 추진한 흔적이 드러났다. 이들은 정부가 북한 소행으로 결론지은 지난해 원자력발전소 해킹 사태 이후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새로운 사업(new business)”이라며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대북공작을 위해 끌어들인 이들 때문에 되레 우리의 최고 국가정보기관이 북한의 역공작에 걸렸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일보가 22일 해킹팀의 이메일 내역을 분석한 결과 2010년 국정원이 접촉하기 전까지 이탈리아 해킹팀이 북한을 언급한 건 2006·2007년 각 1번, 2009년 2번뿐이었다.

그러나 2010년 나나테크가 국정원의 의뢰를 받아 접촉한 후부터는 700건 이상 북한을 언급했다. 특히 북한을 새로운 ‘사업 파트너’로 여기는 모습이 여러 번 발견됐다. 2013년 2월 24일 한 해킹팀 팀원은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이솝우화 ‘북풍과 태양’과 ‘전갈과 개구리’를 생각해봐”라는 이메일을 회람시킨다. 북한이 같은 달 12일 3차 핵실험을 한 직후였다. 이 우화들은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이 한반도 내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며 인용한 것들이다. 북한의 ‘옷(핵)’을 벗기기 위한 햇볕정책이 실패한 만큼 남북 상황은 ‘북풍과 태양’이 아닌 ‘전갈과 개구리’ 우화와 닮았다는 의미다.

지난 5월 9일에는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 확대를 우려한다는 기사를 인용하며 “지정학(geopolitics)은 경제(finance)를 초월한다. 사이버전쟁을 포함, 모든 전쟁은 지정학이 결정한다”고 썼다. 또 “이미 북한의 핵무기 사정권은 진짜 ‘글로벌’해졌다”는 언급도 있다. 앞선 4월에는 “서방 국가들이 이제 북핵의 사거리 안에 거의 들게 됐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북한의 핵 역량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라”고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이들이 북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1년 즈음으로 추정된다. 한 팀원은 2011년 12월 북핵 프로그램을 설명한 외신 기사를 공유하며 “사이버전쟁과는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다”고 썼다. 북한을 협상 파트너로 여기기 시작한 건 지난해 벌어진 대규모 원전 해킹 사태로 보인다. 당시 국정원은 물론 일부 국내 보안업체들도 해킹팀과 접촉했었다.

2014년 12월 25일 해킹팀은 국내 한 업체 관계자가 “한국 정부가 해커를 찾고 있다”고 보낸 이메일을 회람한다. 한 팀원은 “새로운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다른 팀원은 “한국 정부와 국무총리가 크게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썼다. 북한이 사이버전사를 6000여명으로 증원했다는 기사에는 ‘정말 사랑스럽다(how lovely)’라고 반겼다.

현재 이탈리아 밀라노 검찰이 해킹팀의 자료유출 사건을 수사 중이지만 와해된 팀원들의 행방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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