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축구계에서 ‘닥터 정’으로 통하는 정몽준(64). 그는 국제축구연맹(FIFA) 개혁파의 한 축이었다. 17년(1994∼2011년) 동안 부회장을 지내며 FIFA의 불투명한 회계와 폐쇄적인 의사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땅에 떨어진 FIFA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적임자다. 그러나 FIFA 수장에 오르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은 높다.
현재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겸 FIFA 명예부회장과 알리 빈 알 후세인(40) 요르단 왕자, 미셸 플라티니(60)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 등이 거론된다. 정 명예회장 측은 선거가 내년 2월 26일(현지시간) 열린다는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FIFA 집행위원회가 선거 시점을 최대한 늦춘 이유는 뭘까? 당초 투표는 이르면 12월에 가능하다는 전망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제프 블라터(79) FIFA 회장이 유력한 회장 후보로 꼽히는 플라티니 UEFA 회장을 배려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지난 20일 “(아직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은) 플라티니가 블라터의 개혁안을 칭찬하는 성명서를 뿌렸다”고 보도했다. 플라티니는 과거 친 블라터였다가 최근 FIFA 개혁을 외치며 블라터와 대립 각을 세웠다. 그런 그가 다시 블라터를 옹호하기 시작한 것은 아프리카연맹(54표)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럽연맹(53표)을 비롯해 아시아연맹(46표), 남미연맹(10표), 북중미카리브해연맹(35표)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주장하는 플라티니가 최다 회원국을 보유한 아프리카연맹의 지지를 얻으려면 블라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블라터가 자신의 텃밭인 아프리카연맹 표를 ‘후계자’로 찍은 플라티니에게 넘겨주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선거일을 늦췄다는 관측이다.
정 명예회장 측근은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선거일이 늦춰진 게 마음에 걸리지만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조만간 국제 축구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들이 다수 포함된 태스크포스를 꾸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으로선 개혁 이미지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유럽 독식’을 선거 쟁점으로 몰아갈 필요가 있다. 역대 FIFA 회장 8명 가운데 비유럽 출신은 주앙 아벨란제(브라질)뿐이었다. 2011년 1월 FIFA 부회장 선거에서 알리 왕자에게 패해 ‘야인’이 된 정 명예회장은 지난 4년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23일 북중미카리브해연맹 골드컵이 열리는 미국으로 출국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개혁파’ 정몽준, FIFA수장 가는 길 ‘가시밭’
입력 2015-07-23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