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높이기 위해 전문적 운용 공사 신설하자”… ‘노후 종잣돈’ 국민연금 500조 어떻게 굴려야 할까

입력 2015-07-22 02:29

한국인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 기금이 올해 안에 500조원을 돌파한다. 연금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누가, 어떻게 굴려야 하는가에 관한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연금을 전문적으로 운용할 공사를 신설하자는 입장이다. 반대 측에서는 연금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고 다른 목적으로 전용될 수도 있다며 이런 움직임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내 노후자금, 국민연금은 어떻게 운용되나=국민 상당수가 매달 내는 국민연금은 수익을 위해 국내외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된다. 이를 전문적으로 실행하는 곳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다. 본부는 국민연금공단 산하에 있다.

기금운용본부에 투자 지침을 내리는 곳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다. 기금운용위는 연금의 운용·관리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고 당연직 위원 5명과 위촉위원 14명 등 20명으로 구성된다. 위촉위원으로는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농협중앙회, 바른사회시민회의 등이 추천한 인사가 들어간다. 이들 대표가 가입자인 국민의 의견을 연금 운용에 반영하라는 취지다.

◇“수익성 높이려면 기금운용본부 독립 필요”=정부는 현 운용 체계에 변화를 주려 한다. 원종욱 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장은 복지부의 의뢰를 받아 새로운 체계를 짰고, 21일 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이를 발표했다.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공사로 독립시키고, 기금운용위는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상설화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정부가 새 판을 짜려는 이유로 내세운 것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조직을 금융 논리가 지배하는 곳으로 바꾸면 더 높은 투자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은 5.25%였다.

원 실장은 “캐나다공적연금공사의 2013년 수익률은 16.93%,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의 2013년 수익률은 18.07%였다”면서 “국민연금과의 수익률 차이는 전략적 자산배분과 자산군별 전술 차이에 의해 발생했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강화해 수익률을 높이자는 얘기다. 그는 “수익률을 연평균 1% 포인트 높이는 것은 보험료율을 2.5% 인상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국민연금의 최근 수익률보다 장기간 누적 수익률을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2000∼2013년 주요국 연기금 수익률을 비교하면 국민연금은 6.33%로 캐나다 네덜란드 스웨덴 일본에 비해 높다.

반대론자들은 또 수익성보다 안전성에 우선 가치를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은 토론회에서 “연금의 최고 가치는 안정성”이라면서 “고위험, 고수익만 좇다 실패할 경우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고 말했다.

기금운용위를 가입자 대표 대신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하는 데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이 위원장은 “이명박정부 당시 해외 자원투자와 관련해 연금을 동원하려는 시도를 막아낸 건 가입자 대표였다”고 했다.

◇덩치 커진 국민연금 누가 노리나=정부의 국민연금기금 운용체계 개편 시도를 정부 여러 부처와 증권·금융업계 등의 이해가 어우러진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부 안대로 기금운용공사가 설립되고 기금운용위가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개편되면 연금 투자에 관한 규제도 한결 덜해지게 된다. 채권보다 주식 위주의 투자가 늘어나고 자본시장 활성화로 증권·금융업계에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도 커진다.

아울러 기금운용공사가 설립되면 연금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공공기관 전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기재부가 경기 부양 등의 목적을 위해 국민연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유혹에 늘 사로잡혀 있다고 보고 있다.

연금 운용에서 손실이 생겼을 때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게 된다. 국민연금 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에서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기금운용공사와 기금운용위에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면서 “정부가 책임을 방기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의 개편안은 투자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복지부와 연금을 계속 노리고 있는 기재부, 국민연금을 통해 수익을 내려는 금융기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